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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뒤의 감춰진 세계를 최초로 본 과학자가 인류에게 전한 충격적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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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1
우리의 삶에는 우연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마음의 영역에서는, 사람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일정한 한계 안에서 실제로 진실이 되거나, 진실처럼 작동합니다. “In the province of the mind, what one believes to be true, either is true or becomes true, within certain limits.” 그는 현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추적하고 있었다. “I call it the Earth Coincidence Control Office.” (저는 이것을 ‘지구 우연 통제국’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이 보이지 않는 작동을 ‘우연’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삶의 방향을 정렬시키는 어떤 시스템, 그리고 사건들이 배열되는 방식으로 이해했다. 이 질문을 끝까지 따라간 사람의 이름은 존 커닝햄 릴리. 그는 뇌와 의식을 연구하던 신경과학자였다. 1950년대 중반부터 그는 실험의 방향을 외부가 아닌...
자막

우리의 삶에는 우연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그는 현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취적하고 있었다.

그는이 보이지 않는 작동을 우연이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다. 삶의 방향을 정렬시키는 어떤 시스템 그리고 사건들이 배열되는 방식으로

이해했다.이 질문을 끝까지 따라간 사람의 이름은 존 커닝 릴리. 그는 미국립보건원 소속으로 내와 의식을 연구하던 저명한

신경과 학자였다. 1950년대 중반부터 그는 실험의 방향을 외부가 아닌 자기 자신에게로 돌렸고 그 시점부터 그는 감춰진

세계를 경험했다고 주장한다. 이제부터의 이야기는 그가 본 세계에 대한 기록이다.

언어라는 틀.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받는다. 그 순간부터 세계는 단어로 잘려나간다.

나무, 하늘, 사랑, 고통. 각각의 단어는 무한한 경험을 하나의 상자에 가둔다. 풀은 하늘을 본 순간 파랗타는 단어가

떠오르면 그 하늘이 가진 수만 가지 다른 색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언어를 배우기 전 아이가 보는 세계는 구분도 경계도 이름도 없는 순수한

경험의 연속이다. 하지만 단어를 익히는 순간 그 무한한 가능성은 유한한 범주로 축소된다. 우리는 세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찰라의 순간 떠오르는 이미지들. 하지만 정말로 그것이 전부일까? 우리가 본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존재하는 것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막이 작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950년대 릴리는 외부 자극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최초의 감각 차단 탱크를 개발한다.

따뜻한 소금물로 채워진 어둡고 방음이 되는 공간에서 피엄자는 감각적으로 격리된 상태로 오랫동안 떠 있을 수 있었다.

그는 이것을 인간 의식의 본질을 탐고하는 수단으로 여기고 1954년 하나의 실험을 시작한다. 모든 빛과 소리를 차단한 채 물 위에

그저 떠 있는 실험이었다. 외부 자극이 완전히 사라진 그 공간에서 그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의식은 여전히 무언가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감각이 아닌 언어로 만들어진 또 다른 세계였다.

언어는 현실로부터 우리를 분리시키는 막이다. 릴리가 도달한 결론이었다. 언어는 경험을 설명하지 않는다.

경험을 감옥에 가둔다. 어떤 경험의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단어의 테두리 안으로 축소된다.

사랑이라 부르면 그 이름에 담기지 않는 수천 가지 감정은 증발한다. 공포라 명명하면 그것은 피해야 할 대상으로 고정된다.

물 위에 완벽한 정적 속에서 단어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갔을 때 비로소 남은 것이 있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

경계도 없고 끝도 없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것.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언어라는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시뮬레이션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의식의 지도. 그는 수년간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감각 차단 탱크 안에서 외부 자극을 끊어낸 채 의식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를 계속 지켜보았다. 그 실험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다. 같은 환경과 같은 조건이었지만 의식의 경험은 매번 같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자신과 세계의 경계가 녹아내리는 체험을 하기도 했고 어떤 날에는 극도의 공포 상태를 느끼기도 했다.

감각의 차이는 분명했지만 언어로는 완벽히 담아낼 수 없는 그 한계성을 느끼고 좌절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이 경험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반복해서 나타나는 상태들을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의식이 확장되는 방향을 플러스,

수축하는 방향을 마이너스로 표시했다. 플러스 상태에서는 경계가 흐려진다. 나와 세계의 구분이 느슨해지고 시간은 이전과 다른 밀도로 흐른다.

모든 것이 하나의 맥락 안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릴리는이 지점을 플러스 3이라

기록했다. 육체와 물리적 우주를 벗어나 만물이 창조되는 본질의 단계였다. 더 깊은 증위에는 플러스 1이라

불리는 영역이 있었다. 그는이 상태를 신과 합일 상태에 너무 심오하여 인간의 언어와 기억으로는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여겼다.

반대편에는 마이너스 상태가 있다. 의식은 수축하고 사소한 불안이 거대한 공포로 증폭된다.

시간은 끈적하게 늘어지고 같은 생각이 반복된다. 빠져나오려 할수록 더 깊이 잠긴다. 그는 극도의 공포와 함께 마이너스 6

상태를 경험했고이를 영혼의 어두운 밤 지옥의 가이드 투어라고 표현했다. 평생 쌓여온 두려움이 한꺼번에

드러나는 상태였다. 극도의 공포를 마주한 그는이를 공포를 직면함으로써 카르마를 태우는 과정이라 이해했다.

플러스와 마이너스는 의식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에 대한 표식이었다. 같은 현실을 살아도 의식이 노인

위치에 따라 세계는 전혀 다른 얼굴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 그가 확인한 것은 바로이 지점이었다. 의식은 하나의 평면이 아니다.

그 안에는 층이 있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층을 오르내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이 지도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다.

현실이 변한 것처럼 느껴질 때 최소한 자신이 어디에서 있는지 이해하고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그는이 지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지구연 통제국 1960년대와 70년대 서구 사회에서

LSD와 케타민 같은 물질은 지금처럼 전면적인 금기의 대상은 아니었다. 정신의학과 신경과학 영역에서는 의식의 구조를 탐사하기 위한 실험 도구로

사용되었고 동시에 사이키델릭 문화와 맞물리며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릴리 역시이 흐름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는 감각 차단 탱크를 통해 외부 자극을 끊는 실험을 이어가는 한편 약물을 통해 내부의인지 필터를 느슨하게 만드는 시도를 감행했다.

외부를 차단해도 내부에는 여전히 프로그램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그 프로그램 자체를 흔들어야 한다.

국립건원의 지원을 받던 저명한 과학자가 환각제를 실험에 접목한다는 것은 당시 과학계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감각 차단 탱크 안에서 자신의 의식을 실험대로 삼았고 그 과정에서 점차 사회적 학문적 궤도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정리해 온 의식 상태의 지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끔찍한 경험을 맞닥뜨린다. 다량의 약물을 사용한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가 제거되어 손에 지어지는 환상을 본 것이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그는 천장을 향해 외쳤다.

"누가 위에서 조종하는 거냐?" 그리고 그는 답을 들었다고 말한다. 너에게 무의식적인 공포가 있어서 그것을 겪게 했다.

릴리는이 장면을 환각으로 넘길 수가 없었다. 그 경험은 마치 누군가가 정교하게 짜놓은 체스판 위 장기말이 된듯한

무력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는이 순간을 통해 자신이 우주의 관찰자나 조종자가 아니라 거대한 실험 구조 안에 놓인 피실험체에 가깝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자각했다. 그는 이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이름을 붙였다. 지구 우연 통제국

즉 에코였다. 그는 이것을 신이나 인격적 존재로 정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관려적이고 기계적인

이름을 택했다. 어떤 존재라기보다 사건과 사건이 배열되는 장치에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처음 에코를 인식했을 때 릴리는 강한 공포를 느꼈다. 자신의 삶이 감시되고 조정되는 것처럼 보였고이

체계가 자유 의지를 위협하는 통제 장치로 느껴졌다. 자신을 시험하고 압박하는 냉혹한 구조로 인식되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삶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져 왔다. 자동차 사고로 손에 심각한 화상을 입기도 했고 이후 그는 적정량에

20배가 넘는 PCP를 투여한 상태에서 자전거를 타다 뼈 아홉 개가 부러지는 심각한 사고를 당한다. 의식을 잃은 그는 병원으로 후성되었고

사경을 헤맸다. 혼수 상태였던 그는 에코에 의해 초신성이 복발하고 원자 전쟁으로 행성들이 하나씩 파괴되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행성 전체가 데이터처럼 삭제되는 풍경이었다. 그는이 경험을 통해 개인의 생존을

넘어 문명 전체가 언제든 종료될 수 있다는 위험마저 느끼게 된다. 사경을 헤매던 5일째 에코는 그에게 최후통첩과 같은 메시지를 보낸다.

이제 그것을 멈추고 현실로 돌아가 인간이 되는 법을 배워라. 릴리는이 메시지를 받아들였고 의식을 회복하며 비로소 관기 어린

실험을 멈추고 인간 릴리로 돌아오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에코에 대한 릴리의 인식은 조금씩 달라진다.

만약 모든 것이 조종된다면 왜 선택의 여지는 항상 남아 있는가? 왜 같은 상황에서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는가?

릴리는 에코를 통제자가 아니라 삶을 정렬하는 시스템으로 보기 시작했다. 에코가 다루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선택이 놓이게 되는 큰 흐름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장기적 우연으로 받아들였다. 언제 어떤 사건이 삶에 등장하는지,

어떤 만남과 사고가 겹쳐지는지 어떤 방향으로 큰 줄기가 형성되는지는 개인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단기적인 우연.

즉 그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반응할지는 개인의 몫으로 남아 있다. 발견은 없다.

오직 게시만 있을 뿐이다. 그 선택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의 의식 상태에 따라 다음에 펼쳐지는 장면이 달라진다고 그는 이해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작동하고 있던 구조가 드러났을 뿐이라는 인식이었다.

대체 현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과거가 있었고 미래가 올 것이며 현재를 살고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언제나 지금이 순간뿐이다. 과거는 기억 속에 있고 미래는 예상과

상상 속에 있다.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결국 이찰라의 인식이다. 그렇다면 질문이 하나 남는다.이 지금이라는 현실은 정말 하나뿐일까?

같은 순간에 다른 선택지가 동시에 열려 있다면 어떨까? 현대의 다중 우주 이론이나 시뮬레이션 가설은 여러 현실에 동시 존재

가능성을 말하지만 그가 말하는 대체 현실은 물리적으로 분기된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릴리는 명상과 의식 실험을 통해

현실이 하나의 선형 구조가 아니라 동시에 펼쳐진 여러 경로처럼 느껴지는 장면을 반복해서 경험했다고 기록한다. 마치 도서관의 서가처럼 과거와 현재

그리고 수많은 미래의 선택지들이 한 공간에 겹쳐 존재하는 감각이었다. 그 안에는 나라는 존재의 여러 판이 동시에 놓여 있었다.이

경험에서 핵심은 선택이었다. 그는 의식이 어느 상태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현실의 경로에 접속하게 된다고 보았다.

현실은 이미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어떤 신념과 어떤 상태에서 선택하느냐에 따라 동개하고 다시 세워지는 확률의 장이라는

인식이었다.이 관점에서 대체 현실은 특별한 체험자에게만 열리는 세계가 아닌 일상 속에서 계속 작동하는 방식에 가깝다.

같은 사건을 겪고도 누군가는 인생이 무너졌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방향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사건은 같지만 그 사건을 통과하는

의식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은 하나의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선택의 순간마다 미세하게 갈라지고

우리는 그중 하나의 경로를 따라간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전혀 다른 다음 장면이 이어졌을 수도 있다. 이때 선택되지 않은 경로들이 바로 대체

현실이다.이 이 관점에서 현실은 운명도 아니고 완전히 무작이 혼돈도 아니다. 조건과 선택이 함께 작동하는 구조에

가깝다. 우리는 하나의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 중 내가 선택한 지금이 경로를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대체 현실이란 지금이 순간에도 다른 삶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가능성이다.

삶이라는 게임. 대체 현실의 개념이 가르키는 끝은 초월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이다. 무수한 선택지와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인식은이 세계가 허상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왜 지금이 제한된 현실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는 경계가 없다.

경계가 없다는 것은 기준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택이 무한하면 의미는 희미해지고 결과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면 책임

또한 성립하기 어렵다. 삶이라는 경험이 밀도를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약이 필요하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 제약을

전제로 설계된 프로그램에 가깝다. 육체라는 한계, 시간이라는 직선, 언어라는 불완전한 도구, 그리고 죽음이라는 종료 조건.

이 모든 제한은 불편함이 아니라 삶이라는 게임을 성립시키는 규칙이다. 삶을 게임에 비유한다면 인간은 모든 정보를 볼 수 있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규칙의 일부만 허용된 상태에서 선택해야 하고 결과를 되돌릴 수 없으며 실패의 감각을 온몸으로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조건 때문에 선택은 무게를 갖고 경험은 기억으로 남는다.이

이 구조 안에서 통제와 자유는 대립하지 않는다. 단기적인 선택은 언제나 개인에게 남아 있다.

어떤 생각을 붙잡을지, 어떤 태도로 사건을 통과할지, 어떤 방향으로 다음 발을 내디들지는 여전히 선택의 영역이다.

삶은 탈출해야 할 과목도 완벽히 조종 가능한 시스템도 아니다. 주어진 조건 안에서 플레이해야 하는 게임에 가깝다.

규칙을 부정할수록 고통은 커지고 규칙을 이해할수록 선택의 여지는 선명해진다. 인간이라는 프로그램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삶은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체험이 된다. 모든 것을 아는 존재가 아니라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해야 하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이 게임의 핵심이다. 영상의 일부 내용은 책 더 센털 오브 사이클론과 그의 인터뷰 원문 그리고

지식이서제 개인 견해를 담았다. 존 커닝햄 릴리는 의식을 연구한 과학자였다. 인간의 뇌가 환경과 조건에 따라

얼마나 쉽게 재구성되는지에 대한 담고는 감각 차단 탱크 실험과 고립 환경에서의 의식 변화 연구를 통해 의식 연구사의 분명한 흔적을 남겼다.

다만 그는 약물 실험을 통해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어섰고 그 선택은 탐구의 확장이자 동시에 현실 감각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길이기도 했다. 그가 에코나 대체 현실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체험은 누군가에게는 통찰처럼 보일 수 있고 또 다른 시선에서는

과도한 약물 사용이 만들어낸 외곡이나 편집증 해석의 한 형태로 읽힐 여지도 있다. 그렇기에 과학자의 실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이 자신의 의식을 실험대 위에 올려 놓으며 남긴 주관적 기록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그는 자신을 인간이란

바이오터를 프로그래밍하는 프로그래머로 여겼다. 마음의 영역에는 한계가 없으며 우리는 인간으로 살기 위해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이 게임을 흥미롭게 유지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여정은 하나의 결론을 남기기보다 질문을 남긴다.

의식은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는 상태이며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의식의 상태 위에서 구성된 주관적 장면일 수

있다는 시선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상태의 의식으로이 현실을 통과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