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다음 유명한 이야기를 다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천국의 눈에
보이는 표시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아, 여기에 있다거나 저기에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말씀드리건데 천국은 당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혹은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 가운데 있다. 그렇다면 천국의 왕국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왕국은 차원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그리고 천국은 구름이 어딘가의 장소가 아니라 형태가 없고 열려 있으며
고요한 하늘의 광대함입니다. 그것은 넓은 의식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넓은 의식의 차원이 당신 안에 있습니다. 왕국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기 지금 당신 안에 있습니다.이 이 진리는 한
전통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붙다 또한 같은 실제를 가리쳤습니다.
그분은 공 정확히는 공간성, 넓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생각으로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생각을 넘어서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하인과 같이 있으라. 그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하인는 조용히 가만히 그리고 무엇보다 깨어 있습니다.이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당신은 깊은 밤 고요한 집안에 앉아 있습니다. 당신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귀 기울입니다. 하지만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조급한 귀로 듣는 것도 아니고 생각과 해석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듣는 것도 아닙니다. 당신은 존재감으로 듣습니다.
생각은 서서히 사라집니다. 남는 것은 오직 지금이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깨어 있는 고유함 속으로 존재가 흘러 들어옵니다. 이것과
동일한 진입점을 선의 이야기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수년 동안 스승과
함께 순례를 해온 제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고요한 시내가에 앉아
잠시 쉬게 됩니다. 그때 제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스승님, 저는 어떻게 선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스승은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멀리산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느냐? 제자는 멈칫하며
말했습니다. 아니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스승은 대답했습니다. 더 잘 들어보거라. 그래서 제자는
다시 귀울여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생각을 멈췄습니다.
깨어났고 깊은 존재의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그것을 들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 스승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바로 거기서 선에 들어간다. 바로 그 순간 생각과 생각 사이의 틈이
진입점입니다. 생각 아래로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잠이 드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넘어서는 깨어 있는 존재 상태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성인과 신비가 그리고 깨어난 이들이 가르키는
곳입니다.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단지 명상 중에만 경험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이 존재의 상태는 일상 속으로도 가져와야
합니다. 평상시 일상 생활하면서도 존재의 상태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먼저 자기 몸 안에 느낌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조용히 퍼져 있는 생명감 살아 있음을 느껴
보십시오. 손, 가슴, 배 안쪽에 있는 미세한 진동을 느껴 보십시오.
그곳에 주의를 두고 쉬세요. 당신의 의식은 강박적인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나게 됩니다. 또 다른 방법은 호흡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기계적으로가 아니라 완전히 깨어 있는 주위로 한 번의 의식적인 숨 들이시고
내시고 이것만으로도 이미 명상입니다.
공간이 생기고 틈이 생깁니다. 당신은 결코 숨을 의식하면서
동시에 생각에 빠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붙다가 2500년 전
생각을 멈추라고 말한 대신 호흡을 알아차리라고 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삶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행암 두과 존재 비행입니다. 우리는
인간 존재입니다. 인간은 우리의 형태적 정체성입니다.
몸, 마음, 이야기 역할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소중하며 존중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우리는 존재 비행입니다. 모든 것 뒤에 있는
형태 없는 의식. 그것이 당신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가장 깊은 지혜는 생각이 아닌 존재 상태에서 솟아납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함 속에 길을 잃습니다. 반대로 극소수는 존재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합니다. 한 젊은 인도 성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16세의 나이의 깊은 존재 상태에 들어갔고 몇 년 동안 사원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말하지도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음식을 주고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 후 그는 침묵에서 나와 가르침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바로 라마나 마아리시입니다.
그는 존재속으로 깊이 들어갔기에 한동안은 행암조차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심각한 불균형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행하고 행하고 행하고 무언가를 이루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존재하는 법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더 많은 노력이 아니라 더
깊은 존재감입니다. 고유함으로 돌아가십시오.
당신 아내의 공간성으로 돌아가십시오. 일상 생활 속에서 물론 행동하더라도
때때로 존재로 돌아오십시오. 존재 속에서 행동하십시오.
왕국은 지금 여기 있습니다. 차원은 바로 지금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은 바로 당신 자신입니다. 그 공간을 받아들이십시오.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