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하계연구사 인하경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금요일 밤을 저와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주에 어 구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이르는 선사 시대를 이명훈
학의 연구사와 함께 살펴보셨는데요. 오늘은 저와 함께 더욱더 박진감
넘치는 역사 시대의 시작을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고대인들은 문자와 그리고 그것을 쓸 수 있는 도구를 발명한 이후부터
자신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이 시기를 역사 시대라고도 부르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때도 역사 시대에 포함이 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단순한
문자뿐만 아니라 영상이나 이런 다양한 매체들을 사용을 해서 우리의 모든
많은 활동들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후세의 사람들이 지금의 요리들을 뭐
연구하거나 할 때는 그냥 역사 시대가 아니라 영상 시대라든지 아니면 뭐
데이터 시대라든지 이런 다른 용어로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고대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겼지만 모든 이야기가 다 글로
남겨진 것은 아닙니다. 조선왕조 신록처럼 아주 세세한 이야기가
담긴이야 그 기록이 있는 조선 시대와 같은 때와 달리 고대의 기록은 매우
한정적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에게 더 많은
혼란을 주기도 하죠.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고대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짧게 쓰여진 역사 기록의 몇 줄 말고는 없을까?
그건 아니겠죠. 그래서 제가 지금이 자리에 있는 것이겠죠.
때로는 글로 적힌 역사 기록보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물건들이 우리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물관은 그런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물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보물 창고와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2월에 새로 문을 연이
선사고대가는 구석기 시대부터 고구려 시대까지를 포함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청동기실까지 살펴보셨고 오늘 저와 함께 어 고조선 부여
사만실 그리고 고구려실을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그럼 이동해서 자세한 모습을 살펴보시죠.
들었다? 네. 지난주에 청동기실을 함께
살펴보시면서 청동기라는 용어를 많이 들으셨죠. 하지만 오늘 저와 함께
전시를 둘러보는 동안 지난주보다 훨씬 더 자주 청동기나 철기와 같은 단어를
많이 듣게 되실 겁니다. 이렇게 청동기나 철기와 같은 금속의 등장과
사용은 어 단순히 그냥 도구를 만든 재료가 바뀌었네라고
생각하는 거에서 끝날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금속이라는 그런 그 금속을 사용해서 어떤 도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도구의 재료인 원재료를 구하고 그리고 아주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서 그 재료를 어떤 특으로 만들기 위한 그런 방법들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는 굉장히 많은 노력과 힘이 들게 되죠. 그리고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낸 금속기를 어떤 특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사람이
등장했다라는 것은 그 사회의 구조가 아주 많이 질적으로 바뀌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이런 도구들을 사용을
해서 농사가 굉장히 크게 발달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모여서 살게 되는
규모도 아주 커지게 되죠. 그런 과정에서 사회의 발전도 일어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겨난 모든 그
집단들이 똑같은 형태와 똑같은 규모로 성장을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나라는 굉장히 크고 빠르게 성장을 하게 되고 주변에 있는 여러 집단들을
모으고 하나로 아우르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 나라들이 생기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한반도와 한반도 주변의
지역에서는 어 고구려 아 고조선 그리고 고구려 부여 옥저와 같은 여러
나라들이 생기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상 가장 먼저 등장한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입니다. 그리고 기원전 2세기 경이 되면 좀
전에 말씀드린 고구려, 부여, 옥저 동해 사만과 같은 여러 나라들이
등장하고 성장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 각 국의 모습을 유물을 통해서
지금부터 자세하게 저와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네. 국립중앙 박물관 선사고대관에 들어서서 왼쪽으로 돌아서서게 되면
고대 영역이 시작합니다.이 고대의 영역에 가장 먼저 들어오게
되면 볼 수 있는 유물이 지금 보고 계시는 비파형 동검입니다.
네.이 이 동검은 황해도 신천이라는 곳에서 출토되었다라고 알려진
동검인데요.이 비파형 동검은 고조선을 대표하는
청동기입니다. 비파형 동검이라는 이름은이 칼의
모양에서 딴 것인데요. 고대에 그 여러 줄이 있고 그것을 긁어서음을내는
현악기 중에 비파라는 악기가 있습니다.이 이 칼의 아랫부분이
둥글게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이 앞기인 비파와 닮았다라고 해서 비파형
동검이라고도 부르고요. 아래에는 아주 정교한 문양을 새긴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이런 동검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어
주변에 북방이 북방민족이 사용했던 동검과 그리고 지금의 중국 지역에서
사용됐던 중국식 동검은이 칼의 몸과 손잡이를 모두 한 번에 만든 만든
일체형 동검인 것과 달리이 비파형 동검은 칼의 몸과 손잡이 그리고
손잡이 끝 장식을 모두 따로 만들어서 결합해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작
방법과 과 사용 방법에서 아주 큰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네. 그러면
이제 저와 함께 이동해서이 고조선의 대표적인 청동기인 비파동검과 다른
유물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시죠. 네.이 이 공간은 고조선 그리고
고조선이 존재했을 때 한반도 중남부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안으로 같이
이동하시죠. 고조선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국가입니다.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등장하고 성장했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좀 전에 보셨던 비파형 농검은 지금이 지도에서 보시는 것처럼
지금의 요서에서 요동 그리고 길림성일대와
한반도 북부, 남부까지 아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넓은 지역에 걸쳐서 어
분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비파형 동검이 출된 모든 지점이 고조선의
영역은 아니겠지만 주분포 지역은 아마도 고조선의이
존재했던 분포했던 곳과 일치한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네. 그러면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시죠. 네. 고조선의 대표 청동기인 이런
비파영동검은 지금 벽에 그림을 그려 놓은 것처럼 어 고대의 현악기인
비파와 굉장히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비파형 동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이렇게 가면 점점이 비파형 동검의 형태가 아랫부분이 약간
뚱뚱하고 둥근 형태에서 점점 일자형으로 날씬해지는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데 네. 이렇게 비파형검은 처음에는 비파라는
현악기와 굉장히 비슷하게 만들어졌지만 점점 몸이 어 날씬해져서 결국에는
이제 좀 뒤에 같이 살펴볼 세형검으로 변하게 되고요. 그리고이 비파형검과
함께 출는 유물들이 지금 같이 전시가 되고 있습니다.이
아래쪽에 전시되고 있는 토기와 그리고 청동 거울인데요.이 가운데 있는
토기들은 바로 미송리식 토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어, 지금이 북한
지역에 있는 그 미송리라는 곳의 동굴 유적에서 가장 먼저 출가 돼서 이름이
미속리식 토기라고 불리고요. 이렇게 비파형 동검과 미속리식 토기 그리고
어 아주 굵은 선을 그어서 어 만든 이런 거친무늬 거울이 함께 조합을
이루어서 어 그 출토되는 그런 지역을 고조선의 영역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네. 이렇게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등장하고 성장했던 고조선은 굉장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동일한
그 청분기 문화를 바탕 바탕으로 계속 똑같은 문화를 영유했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밖에서 들어오는 문화 그리고 고조 고조선에서 만들었던 문화를 막
그 서로 주고받으면서 더욱더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바로이
철기에서 알 수가 있는데요. 어, 고조선은 어, 이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성장하다가 점점 이제 그 기원전 4세기 5세기 경이 되면 정
당시 중국은 전국 시대였고요. 전국 시대 중에서 지금 하북성을 중심으로
있었던 연나라와 경계를 거의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접촉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이제 연나라는 철기가
굉장히 발전했던 나라인데요. 이곳에서 들어온 철기 제작 기술이 고조선에도
전해졌고 이런 철기 제작 기술을 바탕으로 고조선은 또 한번 변신을
하고 더욱더 성장을 하게 되는 거죠. 지금 보고 계시는 것은 어 평안북도
위원 용현동이라는 유적에서 출토된 철기 유물들입니다.
어 철기를 어 철기로 이렇게 철 도끼나 굉이 삽을 만들었고 그리고
청동기실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반달돌칼 칼과 똑같이 생긴 이런 돌
칼 반달칼을 철기로 만든 이런 모습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철로
무기도 만들었죠. 이렇게 그 철을 사용해서 고조선은 더욱더 강력한
국가로 성장을 하게 됩니다. 네. 그리고
지금 보시는 것은 고조선의 유적에서 출토된 말과 마차를 장식했던
청동기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는 그
마을이 상장할 수 있는 그런 그 환경이 잘 갖추지 않았지만 어 이런
마구 말과 마찰를 장식하는 장식품이 출되었다는 점에서 고조선의 영역에는
말을 사용할 사육할 수 있는 아주 적합한 환경을 갖춘 곳이 있었고
그래서 이런 것들이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어 역사
기록을 보면 고조선이 한에게 말 몇 만 마리를 선물로 줬다. 이런 기록도
남아 있을 정도로 어 아주 말 사육이 성행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요.이
중에서 더욱더 중요한 것은이 청동 장식들의 모양입니다.
어, 지금 뒤의 벽에서 보실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길게 삭감 모양으로
생긴 저런 청동기는 마차를 장식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아래쪽에 있는이
왼쪽의 것은 마치 권총처럼 생겼다라고 해서 권총형 동기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에 있는 것은 어 한자 중에 이렇게 세
모양으로 생긴 을자형이 있는데 그 한자 모양을 닮았다라고 해서 을자
모양 청동기라고 부르는데 이것들은 모두 말을 그 제어하기 위한 그런
나무 막대들을 끝에 꽂아서 장식하는 그런 청동기들이었습니다.
어, 중요한 것은 이런 장식품들이 고조선의 영역 이외에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고조선 고유의 어, 청동 그 장식품이라는 점입니다. 어, 그리고
저 말의 앞가슴에 달아서 이렇게 딸랑딸랑 소리가 날 수 있게 해 주는
저런 말 방울과 방금 보셨던 을자형 동기 같은 것들은 어, 이제 또 다른
지역에서 또 얘기가 또 나올테니까이 형태를 잘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그러면 자리를 이동해서 다른 유물들을 같이 살펴보시죠.
이렇게 고조선이 한반도 북부와 그리고 뭐 요동 그리고 길림성 일대에서 막
발전을 하고 있었을 때 한반도 중남부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를 볼 수 있는 그런 진열장입니다.
어 그 고조선도 처음에는 비파형검에서 문화에서 시작이 되었다가 점점 이제
철기를 받아들이고 어 발전을 하면서 고조선이 바탕으로 하고 있었던 문화가
새형동검 문화로 변하게 됩니다. 그와 동시기에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도
똑같이 세용동검을 받아들여서 자신들만의 문화를 어 만들고
발전시키는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이쪽
유물들은 주로 어 우리나라 한반도 중에서도 대전이나 그리고 아산,
예산과 같은 충청남도, 그러니까 서해안에 맞닿은 충청남도 지역에서
주로 출는 유물들입니다. 어 한반도 중남부호의 세형동검 문화는
크게 전기와 후기로 구분을 할 수가 있는데요. 지금 보고 계시는이
유물들은 이른 시기의 유물들이죠. 보시면 제일 왼쪽에
세형동검이 나오고 있고요. 그 오른쪽에는 방금
고조선의 유적에서 출토된 말의 앞가슴에 달았던 말 방울과 똑같이
생긴 것이 대전 괴정동이라는 유적에서 출토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쪽을 보시면요.이 이 세형동검과 함께 그 조 세트를
이루어서 항상 같이 출소되는 토기인데요. 왼쪽은 목이 길고
아래쪽이 동그랗게 아주 이쁘게 생긴 토이죠.이 토기는 겉면에 까만색 그을
입히고 아주 정성뜨려서 마연을 해서 빛이 나게 한 그런 토기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을 보시면요. 좀 투박하게 생겼지만 좀 뭔가 귀엽지
않나요? 저는 이런 토기들을 좋아하는데요. 윗부분 구연부에 동그란
모양의 점토를 붙였다라고 해서 점토대토기라고
부릅니다. 이런 한반도 중남부의 세형동검 문화의 이른 시기를 대표하는
것이 바로 세형동검과 저런 원형 동그란 띠를 두은 원형 점토
대토이라고 기억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쪽을 보시면
어 고조선 지역에서 출토된 것과 거의 똑같은 거친무늬 거울이 계속여이
지역에서도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죠.데 이렇게 고조선과
비슷한듯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좀 다른 모습을 이제 오른쪽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네. 한반도 중남부 지역의 세형동검
정 전 정 전기에는 지금 이렇게 아래쪽에 보시면 이런 특이한 모양의
청동기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어 지난주에 청동기실에서 보셨던 농경문
청동기를 떠올려 보시면요.이 아래쪽을 빼고 위만 생각하면 농경문 청동기와
이청동기는 굉장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치 생긴 것이
방패처럼 생겼다라고 해서 방패 모양 청동기라고도 부릅니다. 위쪽에 구멍이
뚫려 있고요. 그리고 앞에 고리가 달려 있어서 어딘가에 매달아서
사용했을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쪽을 보시면
뭔가 대나무처럼 생긴 청동기들이 있죠. 대나무 마디를 이렇게 반으로
쭉 잘라서 만든듯한 모양을 하고 있고 아니면 어 검의 손잡이처럼 생겼다라고
해서 어 검 검 손잡이 모양 청동기라고도 부르는 이런
청동기입니다. 이건 역시 정확한 용도는 뭔지 잘 모르겠지만 방금
보셨던 청 방패 모양 청동기와 마찬가지로 앞에 고리가 달려 있어서
어딘가에 매달아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이 되고요. 그리고 더 독특한
것은 저 벽에 잘 안 보여서 크게 그림을 확대해서 그려 놨는데요. 일부
저런 검 손잡이 모양 청동기 일부에는 저렇게 사슴 모양과 같이 저런 동물을
이렇게 귀엽게 새겨서 넣기도 했습니다.
네. 이렇게 어 정기 세영동검 문화를 그 열심히 어 영위하던 사람들이
있었고이 세형검 문화가 더욱더 발전을 하게
됩니다.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 경이 되면 어 세형동검은 계속해서
이어지지만이 집단에 뭔가 새로운 요소들이 들어오게 되는데요. 어,
방금 보셨던 것과 지금 전시하고 있는 것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요?
네. 여러분들과 직접 소통을 할 수 없으니 제가 바로 답을 드리면요.
바로이 오른쪽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어, 새형동검은 있지만 오른쪽에 뭔가
불구스름만 좀 거친듯한 그런 유물이 등장하게
되죠. 바로 철기가 등장을 하게 됩니다. 어, 이렇게 어, 주조로
만든 철 도끼나 철끌과 같은 것들이이 지역에 등장을 하게 되었고 어,
이렇게 그 세영동 철기가 등장하는 세영동검 문화는 아, 아까 앞에서
보신 것처럼 대전이나 이런 지역보다 조금 더 이제 남쪽으로 중심지가
이동을 하게 됩니다.이 이 유물들은 지금의 전라북도에 있는 완주
갈동이라는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고요.
그리고 이런 새로운 금속과 더불어서이 왼쪽의 토기들을 잠시 보시면요.
점토대 토기와는 계속 이어지지만 가운데 토기를 보시면
그 점토의 모양이 앞과 앞에서는 정말 동그란 모양이었다면 손으로 꾹
누른듯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점토 대토 역시 이런
원형에서 이걸 저희는 삼각형 점토 대토라고 부르는데요. 이런 점토기도
전통이 이어지지만 형태가 바뀌는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네.
그러면 이동해서 좀 더 특 [웃음] 독특한 그리고 특별한 청동기를 함께
살펴보시죠. 네. 좀 전에 어 한반도 중남부
지역의 세형동검 문화를 말씀을 드리면서 방패형 청동기나 아니면
검잡이 모양 청동기처럼 특이한 모양의 청동기가 많이 출된다라고 말씀을
드렸죠. 그런 모습이 더욱더 발전을 하게 됩니다. 기원전 뭐 3세기,
2세기 경이 되면 이제 좀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요. 지금의 전라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지금 보고 계시는 것처럼 이런 어 청동으로 만든
방울들을 묻은 무덤이 많이 확인이 됩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것은 전라남도 한평의
초포리라는 곳에서 발견된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입니다.
처음에 이것이 발견되었을 때는 이런 무덤들이 1970년대에 갑자기 우르르
발굴이 많이 되었거든요. 그때가 정말 뭔가 하늘이 점지해 준 것처럼 그
전까지는 이런 유물들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가 갑자기 많이 발굴이
되면서 이에 대한 연구도 굉장히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처음에는 뭔지 잘 모르다가이 가운데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 당시에
제사를 주관했던 제사장이가 앞에 가슴에는 거울을 매달고 그리고
양손에 이런 그 양쪽에 방울이 달린 이런 청둥기를
손에 쥐고 그리고 한쪽 손에는 긴 나무막대 끝에 이것을 다른 그 방울이
달린이 간두령을 을 꽂아서 양쪽에서 엄청 소리를 방울 소리를 내고 그리고
어 해인 그 빛을 반사하는 그런 것들을 활용을 해서 하늘과 땅을 잇는
여러 가지 그런 제의를 했던 것을 추정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어
가운데이 장대 투 방울을 자세히 살펴보시면요.
표면을 아주 세밀한 선을 새겨서 장식을 하기도 했지만 어이 위쪽에
길게 구멍을 여러 개를 냈습니다. 그 구멍 사이를 자세히 살펴보시면요.
아주 동그란 청동 방울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이
유물들을 전시를 하기 위해서는 수장고에서 어이 유물들을 꺼내서
전시실로 옮기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 굉장히 조심하고 주의를
하지만 저 청동 방울이 아주 조금씩 흔들리게 됩니다. 그럴 때면 지금도
정말 너무나 영영롱한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것을 저희가 듣고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처럼 저런 방울 소리를
막 신명나게 내면서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당시에 이런 그 사회의 그
중심이 되는 이런 사람이 있었다라는 것을 이런 유물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네. 그럼 다음으로 이동해서 다른 유물들을 함께
살펴보시죠. 고조선이 주로 분포했던 지역은 지금의
북한 지역과 그리고 더 북쪽에 있는 지금의 중국 지역이 중심 지역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조선을 좀 더 잘 알고 싶어도 현실적 현실적으로 직접
가거나 직접 볼 수가 없는 그리고 사실 어 그 국립 중앙물관에서도
고조선과 관련된 유물을 더 많이 전시하고 있지만 현재의 중국이나
그리고 북한 지역에서 출토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저희가 더 많은
유물들을 보여 드리지 못해서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희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최근에 북한강 뉴역을 중심으로
고조선과 관련한 이런 유물들이 조금씩 출토가 되었습니다. 지금이 지도를
보시면요. 북한 그 서울보다 조금 더 북쪽에
있는 북한강을 따라서 남양주와 가평 그리고 춘천 지역에서 어 작은 그
목관을 사용한 무덤들이 출견이 되어서 고고학자들이 열심히 발굴를 했는데
거기서 아주 깜짝 놀랄 만한 유물들이 출토가 되었습니다.
왼쪽으로 가서 유물을 함께 하나씩 살펴보시면요.
먼저이 토기입니다.이 무덤 안에서 출토가 됐는데요.
여기서 보시면 아까 그 저희가 한반도 중남부 지역의 새형동건문화 사람들이
사용했던 점토대 토기와는 아주 다른 모양들을 하고 있죠. 특히이 세 번째
저갈색을 띄고 있는이 토기는 화분과 비슷하게 생겼다라고 해서 화분형
토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이 토기들은 주로 고조선 영역에서 많이 확인이
되는 토기입니다. 그리고이 오른쪽에 있는이 청동기를 보시면요. 좀 전에
고조선의 특요의 그 말 말과 마찰를 장식하는
청동 장식품이라고 말씀드렸던 을자모형 청동기가이 북한강 뉴역의 무덤에서도
출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 이것은 대체 대체로 기원전 뭐
2세기에서 1세기 정도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어 보고 있는데 이런
무덤들이 어 고조선의 그 유민들이 내려와서 만든 무덤인 것인지 아니면이
북한강 유역까지도 고조선의 범위에 있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지내고 있는이 한반도
중남부 무 중에서도 북한 뉴역에서도 이런 고조선과 관련한 유무를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네.
그러면 지금까지 고조선에 대해서 같이 자세히 살펴보았고요. 지금부터는 어
기원전 2세기 경에 등장했던 고조선 이외의 여러 나라들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시죠.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일 때에는
부여나 옥적 동해와 같은 여러 나 많은 나라들이 있었습니다. 네. 그
어 그중에서도 고구려와 부여는 일찍부터 고대 국가로 성장을 했고
그리고 옥전나 동해 같은 나라들도 각자의 문화를 가지면서 많은 발전을
이루어 나갔죠. 지금부터 각각의 모습을 살펴보시겠습니다.
네. 먼저 옥저와 동해입니다. 옥저는 지금의 연 러시아 연해주 그리고
북한의 어 한경북부 한북 지역에 그 존재하고 있었다라고
보는 보고 있고요. 그리고 동해는 그것보다 좀 더 남쪽인 어 강원도와
조금 더 북쪽에 주로 있었던 나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이 이 두 나라
역시 지금 우리가 직접 갈 수 없는 곳들이라서 어 아주 지금 보시는
것처럼 몇 점의 토기로 밖에 소개를 못 해 드리고는 있지만이 토기
자체로도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습니다.이 이 왼쪽의 옥저
토기로 보이 볼 수 있는이 토기들과 그리고 오른쪽에이 동해의 토기로
보이는이 토기들은 서로 닮은 듯이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이
특히 동해의이 토기들은 어 지금의 그 강원도나 그리고 강원 영동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강원도 중에서도 영동 지역과 그리고 춘천을 중심으로 하는
영서 지역에서 이것과 거의 똑같이 생긴 토기들이 나오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어 이런 옥전화 동해와 같은 곳들은 우리가 접근하기가
힘들어서 아직까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있지만 어 앞으로
뭔가 기회가 잘 된다고 하면 동해안을 중심으로 아주 북쪽에 있는 음에서부터
옥저 동해 그리고 더 남쪽의 강원도까지이
환태평양을일 때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연구를 해 본다면 우리
역사의 고대를 좀 더 풍부하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네.
그럼 다음으로는 부여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시겠습니다.
부연은 고조선 다음으로 우리 역사상 나타난 국가입니다.
부여는 지금의 그 중국 흥용강성의 속눈평 평야를 중심으로 어 위치했던
국가이고요. 기원전 2세기 경에 등장해서 기원 후 5세기까지 이르는
거의 700년에 이르는 아주 긴 시간 동안 존재했었던 나라입니다.
어 지금 보시는 유물들은 한반도 중남부 중부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인데요. 왼쪽은 이제 청입니다.
보시면 칼의 몸은 철로 만들었고 손잡이는 청동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과 거의 똑같이 생긴 유물이 지금의 중국에 있는 유순노아심이라는
유적에서 출토가 되어서 아 부여와 관련된 유물이구나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하지만 어 이것과 거의 똑같이 생긴 그 검은 어이 청이 검은
청주에서 출토된 것인데이 청주의이 무덤과는 거의 200년과에 가까운
시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부여에서 바로 온 유물인지
어 아니면 어딘가를 거쳐서 온 유물인지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이 한반도 중부 지역이 부여 지역과도 어느 정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 그것을 보여주는 또 다른 유물이 바로
오른쪽에 있는이 유물입니다. 이게 무언지 아실 아시겠어요?네 네.
모양이 굉장히 특이하긴 하지만 금으로 만든 귀거리입니다.
이건 역시 방금 말씀드렸던 그 부여 유적인 유순노아심에서 정말 똑같이
생긴 유물이 출되어서 이건 역시 어 부여와 관련된 유물이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요. 어이 유물은 김포운양동이라는
유적에서 출토가 되었는데요.이서 이서 완전히 서해한여 그 연한 항로를
따라서 교류가 아주요 쉬었던 곳에 위치한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이어서이
바닥기를 따라 이런 물자의 교류가 있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네. 그러면 다음으로는 부여인의 얼굴을 만나러가 보시죠.
네.이 이 유물은 중국의 지린시에 위치한 마오월산이라는 곳이 있는데요.
그 유적에서 출토된 어 금동 얼굴 모양 장식입니다.이
마오월산이라는 유적에는 부여의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굉장히 많이
만들어져서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 어 그 마월산 유적에서 어
1920년대에 확인이 된 유물이고요. 지금 우리와는 생김새가 좀 많이
다르기는 하죠. 하지만 머리 위에 상투를 틀고 있고 그리고 어 이렇게
이마의 주름살이 있고 이런 모습으로 보았을 때 아 이거 이런 모습
부여인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는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고구려의 그 돌무지무덤에서도
사람 얼굴 모양을 하고 있는 작은 청동 장식들이 출소되고는 하는데이
부여인의 얼굴과 조금 비슷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어 북쪽에 위치했던
부여나 고구려 사람들의 모습을 이런 유물을 통해서 추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네.이 이 금동 얼굴 모양 장식을 자세히 보시면 상투 윗부분
끝과 그리고 양쪽 귀, 볼 아래쪽에 아주 작은 구멍들이 하나씩 뚫려
있어서 어딘가에 매달았거나 아니면 끈을
매달 끈을 꾀서 얼굴 앞에 썼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그러면 다음으로는 낭랑유물을 함께 살펴보시죠.
네.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 등장하고 성장하고 또 철기 문화를 받아들여서
더욱더 고대국가의 모습으로 성장을 했던 고조선은 아주 강성하게 활발하게
그리고 주변 나라들과 교류를 하면서 발전을 하고 있었는데요. 어 그
당시에 중국에는 한 나라가 있었습니다. 한 나라는 이제 한 나라
역시 힘을 많이 비축을 해서 한 나라의 무죄라는 그 왕이 등장을 했을
때 아주 북쪽 그리고 서쪽 동쪽 남쪽으로 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버렸고요. 그 과정에서 한나라는 흉로와도 매우 많은 전투를
버렸고 그리고 동쪽의 강국이었던 고조선과도 많은 전투를 버리게
됩니다. 한동안 고조선은 그동안의 힘을 바탕으로 한과 대등한 전투를
버렸지만 결국은 기원전 108년에 한 나라의 전투에서 져서 멸망을 하게
되었고 어 고조선는 옛 땅에 하는 군현을 설치했다라는 역사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하죠. 지금 보고 계시는이 유물들은 그 역사 기록을 어 그
보여주는 그런 유물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평양 지역에서 출발
발견된 그 낭랑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이고요.
어 위에서 보시는 것처럼 이렇게 중국의 한에서 한나라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청동 그릇이 같이 무덤에 묻히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이 아래에 있는 토기들에서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 낭랑은 고조선 옛땅에 그 설치가 되었지만 거기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로 다 바뀐 것이 아니라 고조선 때부터 그
땅에서 살고 있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기존의 고조선의 전통을 유지하는 동시에 새롭게 들어오는
문화들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었던 거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이 토기들입니다. 아까 앞에서 북한강 뉴역에서 고조선
고유의 화분형 토기다라고 말씀드렸던 것들이 바로이 토기들인데요.
낭군이 설치되었지만 어 그 땅에 만들어진 그 땅에서 만들어진
무덤에서는 여전히 고조선 전통의 이런 토기들이 만들어지고 묻였다라는 점을
볼 때에도이 당조선에 살고 있 고조선 때부터 살고 있었던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계속해서 유지해 갔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또 살펴보시죠.
네. 지금 보시는 것은 낭락무덤에서 출토된 칠기와 그리고 다양한
마구들입니다.이 칠기들은 어 칠기는 중국의 진나라와
한나라 때 굉장히 칠기 제작 기술이 발전을 했고요. 이런 것들은 아마도
중국 한 나라에서 만들어서 수입해서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이 위쪽에네 전시되고 있는 말 장식품입니다.
여러 가지 말 장식품들이 있지만 그 중에이 아래쪽에 있는이 유물들의
주목을 할 필요가 있는데요. 지금은 색이 변해서 검은색에 좀
가깝지만 원래는 은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희게 밝게 빛났을
것입니다. 어, 그리고 가운데 그 중간중간에는 붉은색의 보석인 만호를
박아서 더욱 더 화려하게 장식을 하기도 했죠. 그리고 문양을 자세하게
살펴보시면 머리 위에 두 개의 뿔이 나 있고네 개의 발이 달린 뭐이 현실
속에는 없는 동물이지만 뭔가 사슴을 섞어 놓기도 했고 뭔가 봉황 같은
것을 섞어 놓기도 한 그런 신비한 동물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어,이
유물들은 말을 그 마차에 말과 마차를 연결을 하고
그리고 말을 사람의 뜻대로 제어하기 위해서 다양한 도구들을 그 몸에
매달게 되는데 어 그것을 연결하기 위해서 가죽 끈을 매달게 됩니다. 그
가죽 끈을여 장식하기 위해서 만든 말띠 드리개의 장식인데요.
중요한 것은 저런 모양의 말띠드들이 장식이 다른 곳도 아닌 지금의 몽골에
있는 흉로무덤에서만 출토되는 유물이라는 점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에도 어 고조선이 당시 어 동북아시아의
최강자였던 흉로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라는 역사 기록을 이런
유물로 통 유물을 통해서도 확인을 할 수가 있는 것이죠. 네. 그럼
지금까지는 어 한반도의 북부와 그리고 어 더 북쪽에 있는 북쪽에 존재했던
고조선과 그리고 북부의 여러 나라들에서 살펴보았는데요. 지금부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이 땅 한반도 중남부에 있었던 사만의 모습에 대해서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네. 어 기원전 100년경이 되면
이제 한번도 중남부 지역에는 역사 기록의 삼한 즉 마한과 진한
변한이라는 세계의 나라가 있었다라는 역사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그를
대변해 줄 수 있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습니다. 어, 지금이 공간에는
각 사만의 각 나라들이 각각 어떤 모습을 가지고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네. 어 아까 앞에서 세영동검 문화를
살펴보면서 이제 세영동검 문화의 후기인 기원전 뭐 3세기경이 되면
철기가 어 들어왔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당시에 들어왔던 철기는
철기로 만들었던 그 도구의 종류가 아주 많지 않았고 그리고 어 여러
철기를 만들 수 있는 그 기 어 기술 중에서 주조라는 방법으로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어 철기를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요. 어, 철기는 처음에 이제 철이 포함된 광석을 어, 그
광산에서 채취를 했고네 그것을 어, 철 광석에서
철광석에 아주 센 열을 가해서 순수한 철을 뽑아내게 됩니다. 네. 이렇게
철을 뽑아낸 철을 가지고 이제 두 가지 방법을 이용하는데 지금 보고
계시는 것처럼 주조라는 방법을 이용을 하기도 하고 네. 그다음에 이제
단조라는 방법을 이용을 해서 어 철기를 만들게 됩니다. 주조는 지금
여기를 보시면요. 아주 뜨겁게 완전히 녹인 쇠물을
지금이 보고 계시는 이런 거집 안에 쇠물을 부어서 철기를 만들게 되는
거죠. 이렇게 만든 주조 철기는 아주 단단하지만이
이렇게 만든 철기를 서로 부딪히게 되면 잘 깨지는 그런 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 단조로 만드는 것은 어 보통 TV에서 많이 대장깐
땅땅 두드려서 만드는 그런 철기를 단조 철기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대대장깐 땅땅 두드리는 것이 그냥 심심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두드리고 이것을 또 차가운 물에 넣어서 칙시키고 이런 방 과정을
반복하면서 철 안에 포함된 탄소의 양을 조금 늘리고 줄이고 하는 그런
과정들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철기의 단단함을 조절을 할 수
있게 되고 더 다양한 어 철기들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거죠. 지금부터는
이제 그런 다양한 철기를 함께 같이 살펴보시죠.
지금 보시는이 철기는 바로 단조기법을 활용해서 만든 어 사만의 철기입니다.
어 뭐 계속해서 만들어졌던 농기구도 단조 철기로 만들게 되고요. 그리고
지금 보시는 것처럼 아주 크고 긴 칼 그리고 투겁창도 철로 만들게 됩니다.
어, 어떤 재미난 실험을 했는데 돌로 만든 도끼와 철로 만든 도끼가 과연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를 나무를 직접 찍어서 베는 실험을 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어, 돌로 만든 도끼는 12분이 걸렸고 철로 만든
도끼로는 4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것처럼 아주 철을 이용하면 농업
생산력도 굉장히 높아지게 되고 이렇게 무기를 만들어도 굉장히 그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게 되죠. 이렇게 발전한 철기 제작 기술을
가지고 사만의 각국은 더욱더 많은 성장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어 그 발전한 사만이 어 다른 나라들과는 어떤 관계를 가졌는지 한번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사만이
힘을 키워 나갔고 그러면서 이제 점점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 됐습니다. 어
지금 보시는이 지도를 보면요. 마한과 변환 진안이
있었던 그 지역에서 어 여러 유적에서 어이 마한 변환 진안에서 만든 것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든 유물들이 굉장히 많이 확인이 됐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제 아래로 내려와서 보시면 대표적인 것이 어 위쪽에
있는이 청동 거울입니다. 중국 한나라에서 만든 거울이고요. 이런
것이게 마한, 변환, 진한 유적에서 확인이 됐고 그리고 그 아래쪽에 중국
지역에서 만들어서 많이 사용이 되었던 오수전이나 반량 반량전과 같은
동전들도 많이 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왼쪽에는 일본 지역에서 만든
유물들이 어 확인이 되었는데요. 아래에 있는이
토기는 야요이 시대에 만들어진 야요이 토기이고 그 왼쪽에 있는 것들은
중국의 한나라 청동 거울을 일본 지역에서 따라 만든 그런 거울입니다.
그리고 위에는 굉장히 큰 청동기 청동 무기가 있는데요. 어, 투겁창의
형태와 꽉창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크기가 너무 커서 실제로는 쓸 수
없었던 그런 것들입니다. 이렇게 아주 과장되게, 크게 만든 저런 청동기는
일본에서 제작된 아주 특유의 청동기인데요. 이건 역시 어, 사만의
유적에서 출토가 되었습니다. 이런 유적들은 주로 어이 바닷가 근처에서
확인이 되고 있어서 당시에 이런 연한 항로를 따라서 삼한이 중국과 일본의
여러 나라들과 교류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안의
구체적인 모습을 또 토기를 통해서 같이 한번 살펴보시죠.
앞선 시기인 세영동검 문화 때는 이제 지금의 경상남도나 아니면 전라남도에서
출토된 세형동검이나 그것과 같이 출토된 토기들이 모양이 아주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 이게 어디에서 출토된 것이냐라고
유물만 가지고 보면 어, 어디에서 나온 거지 하고 헷갈릴 정도로 좀
비슷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한다면 이제 철기를 직접 어, 만들고
사용하고 어, 이러면서 여러 방면에서 사회가 발전하게 되면서 사만의 각국은
어, 자신들 고유의 색깔을 점점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을
토기에서도 확인을 할 수가 있는데요. 제일 먼저 보실 수 있는 것은 지금의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확인이 되는 경질무문 토기입니다. 주로 중도
토기라고도 부르는데요. 어, 지금의 춘천의 중도라는 곳이 있는데 어,
1980년대에 국립 중앙물관에서이 중도 유적을 발굴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런 토기들을 처음 난생 처음 발굴를 하게 되면서 이것을
이름을 중도 요적에서 출토됐다라고 해서 중도 토기라고 부르고 어
부르기도 합니다. 어이 토기는 아까 옥저와 동해를 살펴볼 때 그 동해의
토기와 굉장히 비슷한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이 옥저동해와이 강원도
지역의 사람들이 굉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요.
그리고 다음으로는 마한의 토기입니다. 마한의 토기는 주로 저렇게 아래쪽에
있는 것처럼 바닥이 둥근 저런 토기들과들이
많고요. 네. 이런 특유의 마한 토기들은 이제 시간이
지나면 점점이 이후에는 백제 토기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네.
그다음으로는 그다음으로는 진한과 변환의
토기들인데요. 어 진한과 변환의 토기는 사실
구분하기는 조금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마한 지역의 토기와는 아주 확
확연하게 구분을 할 수가 있죠. 진한 변환의 토기는 여기 아래쪽과 중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어 굽이 달려 있는 것들이 많고요. 그리고 이런
독특한 모양의 토기들이 이제 시간이 지나면 신라와 가야 토기로 점점
발전하는 그런 변화하는 모습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네. 이렇게 각자의 모습, 각자의 색깔을 가진 사만이 점점 성장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렇다면이 사만을 이끌어 갔던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시죠. 네. 그러면 이제부터는 그 사만의 우두머리에 대해
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번 주에 살펴보셨던 청동기실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은 고인돌이죠.
고인돌 자체는 굉장히 큰 무덤이지만 실제로 고인돌을 발굴해 보면 그
속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비파형동검이나 뭐 돌로
만든 칼 그리고 뭐 옷구슬 정도가 다인데요. 사대에 들어서게 되면 다른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의 무덤을 발굴 조사를 했더니 그 안에서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거죠. 지금 보시는이
유물들은 바로 어 사만의 지배자라고 지배자의 무덤이라고 보이는 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입니다. 어 아래쪽에 있는 이런 중국에서 만든
청동 거울에서부터 아이 사만의 지배자들은 어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 하는 그런 것을 장악을 하고 있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 그리고 어 위에서 보시면 이렇게 검 청 세형동검이 그대로 사용이 되고
있고요. 아니면 어떤 무덤에서는 세형검과 비슷한 이제 동검이 아닌
철검으로 대체가 되는 모습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어 대회 교섭,
교류와 그리고 어 무력, 무위 그리고 이런 어 아주 화려한 구슬도 확인을
할 수가 있어서 이렇게 다체로운 유물을
물건을 한꺼번에 소유할 수 있는 어떤 특정한 개인이 등장했다라는 점에서 그
사회의 모습이 청동기 시대와는 질적으로 바뀌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죠. 그러면 이제 그 구체적인 모습을 같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네. 지금이 영상에서는 이런 사만 지배자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창원 다호리 1호 무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지하로 거의
2m 가량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이렇게 구덩이를 작은 구덩이를 파서
이렇게 아주 진귀한 유물들을 물건들을 묻습니다.
그리고 목관을 올려 놓기 위해 올려 놓기
전에 이렇게 어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어칠한 그릇 위에 감을 올려 놓기도
하고 그리고 아주 잘 만든 저런 철기나
대나무 대바구니와 돗자리 활 화살과 같은 아주 다양한 물건들을 어
묻었죠. 그리고 이것처럼 밤을 흐트려서 어 뿌리기도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이렇게 지름이 80cm 정도 되는 통나무를 통으로 이렇게
속을 파내서 목관을 만들게 되는 거죠.이 이 내부를 판에서 목관을
만들고 이렇게 죽은 사람을
모신 이후에 또 뚜껑을 덮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끈을 묶어서 아래
받침과 뚜껑이 분리되지 않도록 잘 연결해 준 다음에이 목관을 무덤
구덩이 안으로 넣게 되는 거죠. 이렇게 목간을 넣은 이후에도 어 이제
정 아주 확실하게 고정을 하고 이제 흙을 넣어서 이제 무덤을 만드는
과정을 마치게 되는데요. 그 과정에서도 그냥 흙만 계속 묻는게
아니라 이런 진귀한 유물 물건들을 오칠 그릇이나 무기들을 어 그
중간중간에 묻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무덤 하나의 지배자의 무덤을 어
축조를 하는 것을 완성을 하게 되는데요.
방금 영상에서 보신 창원 다오리 1호 무덤의 모습을 실제로 어 유물을 통해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보시면 그 유적에서 출토된 통나무 목관과
그리고이 목관 주변에서 확인이 되었던 다양한 무기들 그리고
어 그리고 오칠한 그릇이 아주 생생한 모습 그대로 출토가 되었습니다.이
창원 다호리는 갈대가 굉장히 많은 갈대밭이었는데요.
이곳이 좀 지대가 낮아서 습한 그 습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덕분에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이런 어 남 옷 옷란 그릇이나
유물들이 아주 생생한 모습으로 남아 있고요. 심지어 당시에 어 그 장례
의식을 치르면서이 오칠 그릇 위에 올려 놨던 곡감과 그리고 무덤 안에
실제로 뿌렸던 밤이 마치 어제 딴 것처럼 너무나 그 신선한 모습으로
아직까지 우리를 우리에게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네.
그러면 다음으로는 사한 사람들은 어떠한 신앙 생활을 했 신앙과 의뢰를
했을까를 유무를 통해서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네. 역사 기록 아주 짧은 역사 기록에 따르면 사한 사람들은 뭐
5월과 10월에 어떤 의뢰를 했다. 이런 기록들이 남아 있는데요. 어
유적 발굴을 하다 보니 지금 보시는 것처럼 새 모양을 본떠 만든 토기들
그리고 청동기가 많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새는 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이기도 했고 이승과 저승을 이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아주 신성한 존재로 사람 삼한 사람들은 인식을
하고 있었죠. 어 저번 주에 살펴보신 그 농경문
청동기에도 소대 위에 앉아 있는 새의 모습을 살펴보실 수 있었을 텐데요.
그런 새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사시대까지
이어졌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어 재밌는 유물을
함께 살펴보시죠. 네. 다음으로는 이제 사만 세 이외에
또 다른 어떤 신앙과 의뢰는 없었을까를 볼 수 있는 유물들입니다.
어, 유물 유적을 조사를 하다 보니 동물뼈가
많이 확인이 되는데요. 어떤 동물뼈는 그냥 사람들이 먹고 그냥 버린 흔적일
수도 있지만 자세히 조사를 하다 보니 그냥 동물뼈가 아닌 것들을 확인을 할
수가 있었죠. 지금 보고 계시는 것처럼 어 동물뼈의 표면에 아주 그
선을 많이 새기기도 했고 그리고이
것을 보시면 사슴의 어깨뼈인데요. 어깨뼈 위에 점을 막 그 구멍을
뚫거나 아니면 불을 지진 그런 흔적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로 봐서
어이 동물뼈에다가 구멍을 뚫거나 불을 지어서 그 하늘의
뜻을 파악하고 하려고 했던 사한 사람들의 의뢰의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쪽에는 아주 작은 토기들이 있는데요. 어 실 너무
크기가 작죠? 제 손가락을 한번대 볼까요? 네. 간음이 되실까요? 너무
작아서 저거이 토기들로 실제 뭐 밥을 해먹거나 뭐 물을 마시거나 이런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어, 이것처럼 어, 실제 사용할
목적이 아니라 그 다른 목적으로 그 만든 이런 토기들 역시 저런 점을
치는 뼈와 함께 출토되는 예가 많기 때문에 단순한 그 미니어처 토기가
소형 토기가 아니라 어, 의뢰를 위해서 특별히 만든 이런 유
물건들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네. 그러면 지금까지는 아주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서 어 그 고대 국가가 어떻게 등장하고 성장을 했는지 그리고
지배자가 어떻게 등장을 했는지에서부터 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의 어
그 자신들의 운을 어 물어보고 그런 의뢰 생활을 했는지와 같은 다양한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어 이런 어 그 사만까지 살펴보셨고요. 지금부터는 어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 사만이 존재하고 있었을 때 우리나라 역사상 어떻게
보면 진정한 고대국가라고 볼 수 있는 강력한 왕권이 등장하는 3국 중에
하나인 고구려의 모습을 자세하게 살펴보시겠습니다.
네. 고구려는 주몽이 세운 나라고 알려져 있고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고구려는 어 제일 처음에 졸본이라는 곳에 수도를 설치한 이후에
어 국내성과 그리고 평양으로 두 번의 수도를 천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
고구려가 위치했던 아주 넓은 지역에 고구려가 남긴 흔적들이 굉장히 많이
있죠. 지금부터는 그 고구려의가 움직였던 그런 궤적을 따라서 고구려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구려가 위치했던 곳은 어 그 어 고구려 고구려는 제일 처음에 졸본을
수도록 하고 있다가 두 번째 왕인 유리왕 때 지금의 어 중국 지린성인
암록강 바로 윗부분 북쪽에 어 국내성으로 천도를 했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이 이 국내성은 어 427년에
평양으로 천도하기 전까지 거의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이
국내성이 고구려의 수도였는데요. 지금 어이 영상을 보시면이
국내성의 고구려의 중심 아주 유적들이 어떻게 있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렇게 흐르는 것이 암록강이고요.
그리고이 위로 흐르는 것이 통구천이라는 하천입니다.이
두 개의 강이 만나는 곳에 어 고구려의 왕성인 국내성이 있었고요.
그리고이 국내성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 너무나 유명한 장군총이나
태왕릉과 같은 돌무지 무덤을 무덤군들이 한 다섯 개 정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북쪽에는 어 국내성을
더 그 확실하게 방어해 줄 수 있는 산성인 환도산성 위치하고 있었고요.
네. 그러면 국내성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함께 살펴보러 이동하시죠.
네. 여기에서는 이제 국내성 어 시기의 어 고구려 유물들에 대해서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제일 오른쪽에 있는 것은 철로 만든 붙뚜막입니다.
어 크기로 봤을 때 실제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붓뚜이고요. 어 불을
떼는 아궁이가 이렇게 네모나게 생겼고 그리고 아궁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연기가 나오는 굴뚝이 있습니다. 어고려뿐만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붓두막을 만들어서 사용을 했는데요.이 이런 모양의 붓두막은 고구려
지역에서만 확인이 되는 그런 특유의 형태입니다. 너무 유명한 안악
사모분이라는 그 벽화무덤에 이것과 똑같이 생긴 붓두막이 그려져 있어서
아 정말 고구려의 붓두막은 이런 형태이구나라는 것을 더욱 더 확실하게
알 수가 있죠. 네. 그리고 어이 가운데에는 고구려의 금동신발 그리고
어 관꾸미계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어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와 신라
무덤에서도 이런 금동 신발이 많이 확인이 되죠. 하지만 어 백제나
신라의 금동 신발과 달리이 고구려의 금동 신발은 바닥에 아주 크고 굵은
이런 달려 있고 그리고 어 실제이 위쪽을 보시면요. 바닥판의 가장자리를
따라서 작은 구멍이 뚫여 있는 것을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위에는 아무것도 없죠. 그래서이 윗부분은 금동으로 이렇게 금속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가죽을 덧대서 이제 구멍을
끈을 꿰어서 아랫부분과 연결을 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고요. 이런 금동
신발의 형태나 크기로 봤을 때 실제살 생활할 때이 신발을 신 씻기에는
굉장히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무덤에 묻기 위해서 특별하게
만든 유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 이것들은
어 국내성을 중심으로 많이 출고 있는 그
기화들입니다. 모 모양을 자세히 보시면요. 이런
짐승무늬 기화도 있고 이런 시기에는 이런 구름 무늬 기화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어느 시기가 지나면 위에서
보실 수 있는 이런 연꽃무늬 기화들이 많이 만들어져서 국내성
시기에 이제 불교를 고구려가 도입을 하고 그런 불교를 그 보급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라는 것을 이런 기화에서도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네. 그러면 어 다음으로는 고구려. 우리가 고구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떠올리는 그 관계토 대왕비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어 저희가 국립 중앙 박물관이
이번에 선사고대관을 개편을 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것 중의 하나가 어
그 이전에 그 박물관에 와서 이곳 전시를 보셨던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구려의 전시실이 굉장히 작았어요. 어 그것은
굉장히 많은 현실적인 이유가 있기는 했죠. 고구려의 중심 지역이 어
평양이나 국내성처럼 지금 우리가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었기 때문에
전시할 수 있는 유물이 많지 않았다라는 것도 큰 그 원인 중에
하나였지만 이번에 개편을 하면서 저희가이 고구려가 어떤 나라였는지를
자세하게 보여 드리기 위해서 아주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금 보고 계시는 관계토 대왕능비 탁본입니다.
어, 지금 보시면 아주 크기가 크죠.이 이 관계토대학능 비를 저희가
직접 가지고 올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이 비석의 표면에 새겨진 문자를
탁본을 한 것을 어 실제 비석 크기 그대로 저희가 전시를 하고 있고이
비석이 네모난 형태를 하고 있어서 1 2 3 4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순서대로 저희가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어 관계토 대왕비가 처음 발견됐을 때의 모습을 한번
같이이 영상을 통해서 살펴보시죠. 어이 관계토대왕 능비는 관계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어 자신의 아버지를 기리면서 414년에 세운 비석입니다.
어 414년에 세워졌지만 어이 비석의 존재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어요. 어 그 이유는 이제 그이 관계토 대학 능비가
위치하고 있는이 지역이 중국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가 만주족이 세운
나라인이고이 만주족은이 지역이 자신들의 신성한 땅이라고 생각을 해서
아무나 이곳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래서이 비석의 존재나
아니면 다른 많은 그 고구려 무덤의 존재가 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어
1880년대에이 비석의 존재가 알려지게 되었죠.
처음에는 너무 오랜 기간 동안이 비석이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기와
막 풀 같은 것으로 잔뜩 뒤엎 뒤집 그 뒤덮혀 있었고 어 이거 여기에
문자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그것을 없애기 위해서 아 막 불을
지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이제 19세기 말에 그 관계소 대왕 능비의
탁본을 했하던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요. 이게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서
사람이 올라가서 굉장히 크기 때문에 이렇게 탁본을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 이렇게 그 관광태양비 탁본을
했는데 제가 아까이기를 없애기 위해서 불을 질렀다라고 말씀을 드렸죠.
이렇게 불을내는 과정에서이 비석의 표면이 터지거나 하는 이런 변형이
조금씩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는 그렇게 그 울퉁불퉁한 면을
가리기 위해서 비석의 표면에 석회를 조금씩 바르기도 했는데요. 그러면서
어 글자의 모양이 조금씩 바뀌면서 지금이 비석의이 글자가 이거다 아니다
하는 그런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불을 지르기 전에
어 친 탁본이 굉장히 어 연구를 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고요. 최근에 국립 중앙 박물관이 이런 그 불을 지르기 전에 어
만들었던 이런 탁본을 구입을 해서 이렇게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시하고 있는이 탁본 중에이 비석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가장 잘 보여
주는 글자가 여기에 있는데요. 너무 희미해 좀 잘 알아보기는 힘들지만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어 지금 세 글자씩 있습니다.
북 강상 광계토
경평안 호태왕이라고
해서이 비석 이렇게 큰 비석이 관계토대왕을 위해 맞는 것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 거죠. 네. 그러면이 관계토대왕 능와 더불어서
국내성의 이런 국내성에 존재하는 중요한 유적이었던 돌무지 무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국내성 중심 국내성 주변에 많은
돌무지 무덤이 분포하고 있는데요.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장군총과
태왕릉, 천추총 같은 무덤들일 겁니다.이 무덤들은 규모도 다른
돌무지 무덤들에 비해서 굉장히 큰데요. 우리가 직접어가 볼 수는
있죠. 중국에 있으니까. 하지만 어 아주 큰 마음을 먹어야 갈 수 있기
때문에 지금 박물관에 오시면 어 그 무덤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어 지금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이것들은 돌무지무덤에서
확인된 기화와 벽돌입니다. 그 적속 돌로 만든 돌무지 무덤에서
이렇게 기화와 벽돌이 확인이 되었다고 하니 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요. 어 아주 보존 상태가 좋은 그 장군총을 보면 그 무덤의 제일
윗부분에 건물을 세웠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화와 벽돌은
어 무덤 위에 무덤을 지키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아주 큰 건물을
장식하기 위해서 올렸던 기화와 벽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 여기
보시면 붉구스름한 그 안료가 남아 있어서 그냥이 기와 채로 둔 것이
아니라 아주 화려하게 색칠를 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이 벽돌을 보시면요. 천추만세
그리고 원태왕 능이라는 이런 문자가 찍혀 있는
벽돌이 있어서이 벽돌의 문자, 명문을 따서 천추총
그리고 태왕릉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지금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네. 그러면 지금까지는 국내성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수도의 역할 수도였던
국내성에서 국내성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살펴보았고요. 이제는
427년에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에 대해서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27년의 고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에 남긴 유물들입니다. 어 오른쪽을 보시면요.
평양에서도 만들었던 그런 왕성을 중심으로 저런 기들이 많이 출됩니다.
좀 전에 국내성 지역에서 보셨던 그런 기화들과 어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래쪽에 짐승무늬부터 위쪽에 연꽃무늬 기화가
계속해서 만들어져서 불 고그려가 불교를 계속 중시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요. 그리고 왼쪽을 보시면 고구려의
토기입니다. 고려도 역사가 굉장히 긴 나이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서 토기
형태가 조금씩 계속 변하기는 하지만 지금 보시는이 토기가 아주 전형적인
고구려 토기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양한 모양의 토기가
있지만이 가운데 있는이 토기처럼 몸이 길쭉하고 그리고 바닥이 평평하고
그리고 특히나가 그 동 몸 몸에 보면 어 검은 선을 그어서 문양을 표현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어둡다 어두운 문양이다라고 해서 앞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이런 고구려 토기의 문양과 그리고 아주 겉면이 맨질맨질한 이런
느낌은 계속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이후에 어 한강
뉴역에서도 확인되는 고구려 토기에서도 그대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네. 그리고이 왼쪽을 보시면 원리 절터라는 곳에서 출토된 소조불상들이
있습니다. 어 372년 소수리왕 때 고구려는
불교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이후에 어 그 사회를 통합하고 그 끌어나
끌어나가기 위해서 고구려는 계속이 불교를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을
하는데요. 특히 관계토 역시 불교를 중시해서 평양 지역에 절을 아홉 개나
세웠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네. 그래서 어 20세기 초에이
소조불상들이 확인이 돼서 아 발굴 조사를 해 봤더니 어 그 아주 많은
몇백점에 가까운 이런 흙으로 만든 불상들이 확인이 되었고요.이 곳이
원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라는 것을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네.
그러면 이제 다음으로 이동해서 아까 좀 전에 살펴보셨던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덤이었던 돌무지 무덤 이외에 또 다른 아주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벽화
무덤을 함께 살펴보러 이동하시죠. 네. 이 공간은 고구려의 대표적인
무덤 중의 하나인 벽돌 무덤을 어 좀 더 쉽게 그리고 갑 가깝게
보실 수 있도록 준비한 공간입니다. 크게 어 벽화 모사도를 전시하고 있는
공간과 그리고 그 옆에 어 지금은 우리가 갈 직접 가서 볼 수 없는
벽화 무덤을 아주 실감나게 볼 수 있도록 어 영상으로 만든 실감 영상
공간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이 모사도 전시 공간을 자세하게 한번
살펴보시죠. 네. 평양으로 고구려가 수도를 옮긴
이후에는 이제 원래 만들었던 돌무지 무덤도 만들지만 무덤의 그 형식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바로 어 돌을 사용을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이렇게
작은 돌들을 막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돌로 방을 만들게 되는
거죠. 이렇게 큰 방을 만들 수 있게 되다 보니 방 안 그 무덤 방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 공간 안에 죽은
사람을 묻고 그를 위해서 아주 다양한 그림들을 그리게 된 거죠. 지금이
지도를 보시면 새롭게 옮긴 수도인 평양을 중심으로
평양의 서쪽과 그리고 아 남쪽인 황해도를 중심으로 굉장히 많은 수의
벽화무덤이 만들어진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 구조를 저 모식도로 잠깐 보시면요.
돌을 사용해서 이렇게 방을 만들고요. 무덤 길도 만들게 됩니다.이 무덤
안쪽 벽을 벽화를 그려서 장식을 하는 거죠.
네. 지금은 어 강서 중묘라는 무덤에 그려진 그 그림들을 어 아주 빛
똑같이 따라만든 모사도를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벽화무덤이 만들어졌던 초기인 어 4세기에서 5세기에는
어이 벽화의 주제가 주로 고구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 줄
수 있는 생활풍속도가 굉장히 많이 그려졌습니다. 뭐 씨름을 하는
모습이라든지 고개를 하는 모습이라든지 아니면 부엌이나 마구간의 모습과 같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는데요. 어
시기가 좀 지나면서 6세기 경에 들어가게 되면 지금 보시는 것처럼
동서남북 내 방위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알려진 그런 사신을 그리는 그림들로 주로 바뀌게 됩니다. 지금 보고
계시는 것은 북쪽을 지키는 방위신인 신인 현무를 그리는 것이고요.
그리고 동쪽의 수호신인 청룡을 그린 그림도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좀 전에 보신 현무는
어 사실 강서대묘의 현무보다 강서대묘의 현무는 한번 나중에
찾아보시면 굉장히 사실적으로 멋있게 잘 그려졌는데 강서중물 현무는 좀
귀엽게 그려졌죠. 하지만 지금 보고 계시는 청룡과 백호는 아주 유려한
그런 선을 선으로 멋있게 잘 그려졌습니다.
네. 그리고 지금 보시는이 그림은 강서 중묘의
천장에 그려졌던 그림입니다. 가장 가운데에는 큰 연꽃 그림이 그려져
있고요. 그리고 남쪽과 북쪽에는 봉황이 한 마리씩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오른쪽과 왼쪽에 그려진 것인데요.
오른쪽은 빨간 해, 태양이 그려져 있고요. 그 안에는 다리가 세 개
달린 3조고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하얀 달이 그려져 있고요. 달 안에는
두꺼이가 이렇게 배를 까꿍하면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죠.
그 이외에도 서쪽을 지키는 방위신인 백호와 그리고 남쪽을 지키는 방위신인
주작까지 이렇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런 모사도는 어 종이에 그려진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전시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일정 기간이
지나게 되면 다른 모사도로 바꿔서 전시를 하게 되는데요. 오늘이 방송을
보신 이후에 몇 달 후에 어 전 박물관을 방문하시게 된다면 어 강서
중묘가 아닌 다른 무덤의 모사도를 또 만나게 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그러면 이제 어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에 고구려가 다른 어떤 활동을
버렸는지를 자리를 이동해서 같이 살펴보시죠.
네.이 이 공간은 이제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에 남쪽으로 이제 눈을 돌려서이 남쪽으로 어떻게 세력을 더
넓힐 것인지 아주 많은 노력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런 노력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네. 그러면 이동을 해 보시죠.
지금 보시는 것은 임진강 유역에 남겨진 고구려의 유적들입니다.
임진강은 경기도 파주 근처에서 한강과 합류해서 서서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인데요. 한강 못지 않게 삼국 시대에는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그걸 반영이라도 하듯이 지금 지도를
보시면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서 굉장히 많은 수의 고구려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보시면 무득리 1 2 보루나 우정리
보루처럼 무슨 보루라는 유적이 굉장히 많죠.이 이 보루라는 용어가 좀 어
낯설고 생소하실 수 있는데 어 지금의 비무장 지대나 이런 곳에 있는 어
군사 시설인 초소와 같은 그런 역할을 했던 곳이다라고 생각을 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어 이런 어 방어와 감시를 위한 초소의 역할을 했던 보루 유적도
있지만 어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이
임진강을 따라서 위치하고 있는 왼쪽부터 호로고르와
그리고 당포성, 은데리성 같은 유적들입니다.이
이 유적들에서는 그냥 단순하게 그냥 그 몇 명의 군사들이 어 생활했던
그런 모습들이 아니라 아주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어서이
임진강일대를 어 관할했던 어 그런 아주 중요한
지점이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유무를 통해서
한번 살펴보시죠. 왼쪽부터 보시면 어 영꽃무늬 기화가
호로고루성에서 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오른쪽을 보시면요. 지금은
편밖에 없기는 하지만 기화를 올린 건물의 그 끝부분을 장식해 주는 아주
큰 기화인 치미의 편도 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화가
출되었다라는 것은 기화를 올리는 큰 건물이 있었다라는 것을 의미를 하는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이 호로고르라는 유적은 단순한 군사
시설이 있었던 곳이 아라다라는 것을 잘 알 수가 있죠. 그리고 오른쪽을
보시면 좀 희미하기는 하지만 문자 글자가 새겨진 기화편이 암기화편이
확인이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위에서부터 아래로 읽어
내려갈 수가 있는데요. 7 어네 700 뭐 10 뭐 이런
것이 있고 아래 좀 깨지긴 했지만 또 대화 몇 100
용 이런 글자들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쭉 있습니다. 이것을 해석을 하면
작은 기환은 몇백 몇십 개가 있고 큰 기환은 또 몇백 몇십 개가 있다.
이것을 사용을 했다라는 뜻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는데 이것처럼
호르고루성에는 용도에 따라서 크기가 서로 다른
기화들을 몇 백개씩 만들어서 사용한 아주 중요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요. 그리고 굴뚝을 장식하는 기환나
그리고 어이 오른쪽을 보시면요. 아주 중요한 유물이 있습니다.
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국립 공주 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한성 475라는 특별에 나가 있어서 지금은 어, 직접 보실
수는 없지만 어, 내년 3월쯤이 되면 어, 국립 중앙방물 관해서 직접 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이 유물은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한자로 상,
그리고 고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고라는 것은 북을 뜻하는
한자 어이고요. 그리고 아래쪽에 어 보시면 구멍이 작은 구멍이 뚫린 이런
토기편들이 같이 출가 되었는데요. 어, 이것이 처음에는 무엇인가 했는데
어,이 구멍과 한자어의 의미를 생각을 해 봤을 때 어, 북의 어, 북을
만들었던 토기 편으로 어, 추정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어, 즉 둥둥둥
하고 두드리는 그 북을 가죽으로 만드는데요. 그 가죽을 어, 꾀어서
이을 수 있는 구멍들인 거죠. 이처럼 어 군사를 동원하거나 아니면 뭔가를
알릴 때 둥둥 하면서 북을 북을 치기도 하는 그런 아주 중요한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그런 그 역할을 했던 호로 그 유적이 바로
호로고루라고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임진강 유역으로
고구려가 진출을 했고 그리고 그 아래쪽은 또 한강이 있죠. 임진강과
한강 사이에는 지금의 경기도 양주가 있는데요.이 양주 분지에도 많은 수위
고구려 유적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정말 고구려가 차지하고
싶었던 곳 바로 한강으로 이동해 보시겠습니다.
어, 백제를 몰아내고 드디어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 그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게 된 551년까지
어 아, 그 거의 한 7, 80년 동안 고구려는이 한강 유역을
안정적으로 확보를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런 모습을 이런 유적과
유물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어, 지금 벽에 있는이 지도를
보시면요. 좀 전에 보셨던 임진강 유역과
비슷하게 한강이 있고 그 한강의 바로 북쪽에 지금의
어, 서울 강동구 그리고 경기도 구리를 중심으로 아차산과 용마산 같은
그 산들이 있습니다.이 이 산의 보우리 봉우리마다 고구려의 군사
시설인 보루 유적들이 굉장히 많이 설치가 되어 있죠. 그 보루 유적에서
어 많은 유물이 출가 되었는데요. 그중에서도 홍봉 1보루 그리고 홍봉
2보루가 굉장히 중요한 어 의미를 갖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볼 수
있는이 유물들 때문인데요. 어 이곳 역시 임진강 뉴역의 호로고루성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군사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왼쪽에서 보실 수 있는
것처럼 철로 만든 그 말을 장식하는 아주 다양한 말 장식품들이 나왔고요.
그리고 철로 만든 쇠랑이나 낫과 같은 다양한 농기구들도 출가 되어서
여기서 뭔가 농사도 지역 그 농사를 위한 그런 다양한 활동도 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이 가운데에 있는
철제 기대입니다. 지금은 안전상의 이유로 이렇게 옆으로
누워서 눕혀서 전시를 하고 있지만 전체 길이는 2m에 가깝고요.이
왼쪽이 아랫부분입니다.이 아랫부분의 구멍에 저 크기에 맞는 긴
나무 박들을 끼워서 이걸 수직으로 세워서 사용을 했던 것이고요. 이렇게
아주 높은 철제 기대의 끝을 보면 구멍이 하나 나 있습니다. 지금은
녹이 쓸어서 구멍이 막혀 있지만 저 구멍에 깃발을 달아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큰 철제 깃대를 수직으로 세워서 깃발을 단다고 하면
아주 멀리 있는 곳에서도 아 저기는 고구려군이 있는 곳이구나라는 것을 한
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던 거죠. 이렇듯이 어 이런 큰 철제 기대가
출된 홍년봉 이보루는이 한강뉴역 일대의 어 고구력 군사의
중요 거점 지역이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네. 그리고 제 앞에는
고구려 토기들이 있는데요. 어 앞에서도 계속 고구려 토기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고구려는 어 그 아주 지금 중국이나 북한
지역에 주로 있었기 때문에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의 그
고고학자들이 고고려 토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어요. 왜냐면 직접 볼
기회가 없었으니깐요. 그런데 1980년대에
어 아주 중요한 계기들이 생기면서 어 아 이게 고구려이구나라는 걸 알 수
있는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어 1986년과
1988년에 있었던 아시안 게임과 서울 올림픽인데요.
어 지금은 올림픽 공원으로 그 조성이 되어 있는 몽촌 토성을 경기장을 짓기
위해 그 이전에 발굴 조사를 하게 됩니다. 그 발굴 조사 과정에서 많은
수위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그것을 이제 정리를 해야겠죠.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이게 저희가 발굴된 유물을 정리를 하면 우선은 비슷하게 생긴
것들끼리 모으게 됩니다. 이렇게 모았더니 어떤 것은 좀 회색에 좀
단단한토기들이 있고 어떤 것들은 아주 맨질맨질한데 어이 까만색이나 아니면
노란색을 띄는데 좀 그 연 연 연한 그런 토기들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이
가능했어요. 어 그래서 이것들이 무엇인지를 계속 조사하고 연구를 하다
보니 회색의 단단한 토기는 어 백제 토기 그리고 까맣거나 노란 아니면
붉은색을 띄는 연한 토기들은 고구려 토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런
점에서도 이제 1980년대의 몽촌토성 조사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게 되고 그리고 그 백제의 왕성이었던 몽촌토성을 어 그 고구려가
한강 유약을 차지한 이후에 그곳을 다 자기들이 또 사용했다라는 것을 또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 그리고 어, 그런 모습을 지금이 톡이이
모양은 조금 변하긴 했지만 길쭉한 모양에 까만 선을 그어서 이렇게
앞문으로 장식한 이런 고구려 토기가 출토되었고 그리고 바로 옆에 뚜껑이
있는 토기를 좀 눈여겨 보셨으면 좋겠어요. 어, 고구려의 대표적인 그
뚜껑 있는 합인데요. 이런 그 똑같은 비슷하게 생긴 그 유물이 신라
지역에서도 좀 있다가 같이 출토된 것을 같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네. 그러면 이제 자리를 이동해서 어 남쪽으로 내려왔던 고구려가이 남쪽에
있었던 백제나 신라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유물을 통해서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지금 보시는 것은 어 지금의
경주 지역에 있는 신라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입니다.
제 앞에 있는 것은 호우명 그릇이라고도 부르는 호우 글자가 있는
청동 그릇입니다. 어 청이 무덤은 1946년 그러깐 어
우리나라가 그
해방된 바로 직후죠. 그때 국립 중앙물관이 우리 힘으로 스스로 발굴한
최초의 무덤입니다. 어이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이
유물이 출가 되었는데요. 좀 전에 보셨던 그 고구려의 뚜껑 있는 그릇과
모양이 아주 비슷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지이 토기의를
뒤로 뒤집어서 바닥을 봤더니 이런 명문이 어 찍혀져 있었는데요.이 이
명문의 내용을 같이 살펴보시면 어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을묘년 국강상
관계토지 호태왕 호우십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어
을사년 아을 아 죄송합니다. 을묘년인 415년에
어 관계토대왕은 관계토대왕을 위해서 만든이 호라는 그릇의 열 번째
그릇이다라는 뜻으로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이
을묘년은 관계토대왕이 어 사상을 떠난지 3년째 되는 해인 거고요.
그렇게 어 죽은 광계토을 기리면서 여러 개의 이런 청동 그릇을 만들었고
그중에 하나가 신라 지역으로 전해졌다는 거죠. 이것이 만들어진
것은 이게 5세기 초반이지만 어 이것이 묻힌 호총이 무덤 자체는
6세기에 만들어진 무덤입니다. 그래서 어 5세기 초에 신라 지역으로
전해진이 유물이 신라 지역에서 계속해서 잘 간직되어 오다가 6세기에
만들어진 무덤에 묻였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고요. 그리고 그런 모습을이
왼쪽에서도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어,이 유물은이 청동 그릇은 너무
유명한 금관총에서 출토된 청동 항아리입니다.이
모양이 지금까지 계속 봐 왔던 고구려 토기와 굉장히 똑같습니다. 그리고
손잡이가 달려 있는데요. 손잡이가 넓고 이렇게 가루로 달려 있는 것
역시 고구려 토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이렇게 고구려 토기와
똑같이 생긴 모양으로 청동 그릇 항아리를 만들었고 이것이 어 그 똑같
역시 6세기에 만들어진 신라무덤인 금관총에 묻였다라는 점에서 어 신라와
고구려의 아주 밀접한 관계를 알 수가 있죠. 그럼 이러한 양국의 관계를가를
불교에서도 확인을 할 수가 있는데요. 자리를 이동해 보실까요?
네. 네. 지금 보고 계시는 것은 교과서에서도 나오는 아주 유명하고
중요한 유물입니다. 영가 7년 금동열의 입상이라고도 부르는
불상인데요. 어,이 불상은
1963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출토된 것입니다.
불상을 자세히 보시면 얼굴이 좀 갸름하고 길쭉하게 생겼죠. 그리고
옷을 입고 있는데 굉장히 두꺼운 옷을 입고 있습니다. 몸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어 그 옷의 생김새를 보면 양쪽으로 물고기지지 지느러미처럼
이렇게 뻗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불쌍의 형태로
보아서도 고구려 불쌍이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요.이 이 불쌍이 더욱더
유명하고 중요한 이유는 바로 어 불쌍의 광배 뒷면에 그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네.이 이 광 뒷면을 보시면요.이
불쌍을 언제, 어디서 누가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주
상세하게 어 새겨져 있습니다. 그 내용은 영가 7년인 김희년의 고구려
낭랑에 있는 동사의 주지이며 공경하는 제자승인 연을 비롯한 사도 40명이
어이 불상을 만들어서 세상에 유포하기로 했다. 그리고 어 제 29
번째인이 불상을 비구 법영에게 공양을 했다라는 그런 아주 자세한 명문이
새겨져 있어서 어이 불쌍이 만들어진 해화 그리고 만들어진 지역을 알 수가
있는 거죠. 이처럼 어 6세기에 만들어진 6세기의 고구려 지역에서
만들어진이 불상이 경상남도에서 발견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어
그 5세기부터 6세기 아주 긴 시간에이어서 고구려와 신라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죠. 네. 지금까지 어
이렇게 고구려와 신라를의
관계를 비롯한 어 아주 다양한 모습들을 유물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어 제 그 선사고대관 개편을 준비하기
위해서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몇 달간이 전시실의 문을 닫았었는데요.
어,이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서이 근처를 막 왔다 갔다 하는 중 동안에
어떤 그 박물관을 보기 위해서 어, 이곳을 찾아 주신 어떤 가족의
이야기를 우연히 지나가다 듣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아이
선사고대가들 보기 위해서 박물관에 왔는데 문이 다쳐서 너무 아쉽다라는
얘기를 하고 계셔서 아 속으로 아 여기는 인기가 좀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이것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구나 하는 마음에 좀 뿌듯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아 이곳을 지금 당장 보여 드리지 못해서 좀 죄송하다라는 마음도
있었는데요. 그분들이 이후에 박물관을 한번 더 방문해서 이곳을 직접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오늘의이 라이브
방송이 어 그분들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 있습니다. 어,
그리고 어, 이런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도 아주 속속들이 잘 살펴볼 수
있지만 박물관을 직접 방문하신다면 유물들이 들려 주는 이런 이야기들을
더욱 더 생생하게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네. 그래서 어 이후에도
이제 이어지는 겨울방학 동안 박물관을 많이 찾아 주셔서 어 구석기 시대부터
고구려실뿐만 아니라 이후에 백제부터 뭐 고려 조선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준비되어 있으니깐요. 박물관을 직접 방문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네. 그러면 어 긴 시간 동안 금요일 밤을 저와 함께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어 이제 편안한 금요일 밤 보내시고요. 저는
다른 또 좋은 기회가 있으면 또 다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