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안녕하세요. 써니즈 입니다. 오늘은
리얼리티 트랜서핑 으로 유명한 바딤 젤란드에 여사제 타프티 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처음에 이 책과 만났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1년 도 넘었는데 그때는 거부감이 들어서 몇 페이지 읽다가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이해되기로는
3000년 전의 사제였다는 설정까지는 괜찮았지만 수직적인 내려다보는
그리고 무섭게 생긴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거부감이 들던 것들
저항하던 것들 틀렸다고 생각하던 것들 거짓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러하다는 생각들 모두 제 스스로 만들어낸 것들이었다고
느꼈고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은 여유롭게
읽을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이제야 제대로 이 책과의 인연의 시기가 된 거겠죠.
어쨌든 여사제 타프티 에서 두 스크린 사이 의식의 중앙 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저는 이것을 관찰자, 주시자라고 이해하며 읽었는데
구독자님들은 어떻게 이해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앞부분부터 읽어볼게요. 너희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시간을 초월하여 너희의 세계로 온 타프티이다.
시간은 영원하지. 그리고 나는 그 영원을 거슬러 어디든
언제든 내 뜻대로 갈 수 있다. 3000년 전 나는 이시스 신전의
사제였다.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는 언젠가 알려줄
때가 오겠지. 중요한 것은 너희가 누구인지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그에 대해서도 때가 되면
알려주겠다. 너희가 누구인지 너희 자신조차 모르지
않느냐. 너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그
누구에게도 자기 자신 사용법이란 것을 배운 적이 없다.
물론 없겠지. 너희가 배운 것이라고는
손을 씻거나 기저귀를 가는 법 따위니까.
그 외에 너희가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너희 자신에 대해서든 이 세상에 대해서든
그 어떤 것도 나는 너희에게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그 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려고 한다. 또 너희가 무엇 때문에 존재하며
너희의 인생으로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겠다.
왜냐하면 너희조차 자신의 삶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지 않느냐. 자.
너희의 그 조그마한 의자에 좀 더 편하게 앉아 잘 듣거라.
현실은 너희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사실부터 시작해보지. 현실은 마치 양파처럼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너희는 그중에서 너희가 살고 있는
물질세계와 매일 잠들어 보았던 꿈의 세계만 알고
있을 것이다. 꿈의 세계는 너희의 머릿속에서 나온
허구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과거에 일어났거나 미래에 일어날 일 또는
일어날 뻔했던 모든 일들이 저장된 영화 필름의 보고서 형태로 말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그 보고서에 영화 필름 중 하나를 재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의 꿈은 환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이지.
필름은 물질이고 너희가 보는 영화는 비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그저 단 한 번 바로 지금 존재하는 것이다.
마치 과거에서 현재로 교체되는 영화 속의 프레임처럼 찰나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실제이다. 너희는 먼 옛날 너희의 실제가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각각의 실제는
영혼의 개별적인 삶이니까. 혹은 개별적인 꿈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영혼을 위해서는 반드시 육체가
있어야 한다. 육체 안에 영혼은 존재하면서 여러
형태를 가지게 되지. 즉 육체는
일종의 우주복인 셈이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지
궁금하느냐. 현실과 삶의 특성이 본래 그런 법.
그 특성은 바로 움직임과 변화다. 모든 프레임은 영화 필름을 따라
움직이며 그와 동시에 애벌레는 나비로 변한다.
나비가 알을 낳아 그 알이 부화하면 애벌레가 되고
그 애벌레는 다시 나비가 되는 것처럼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지.
잘 듣거라. 꿈과 생시는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어릴 적 너희는 무엇이 꿈이고 무엇이
생시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그때가 기억나지 않겠지만
그때 너희는 꿈의 세계와 너희가 실제로 살아가는
세계 사이에 그 어떤 경계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너희에게 어른들은
꿈의 세계는 상상일 뿐이며 진짜가 아니다 라고 설명했겠지.
하지만 사실 그건 거짓이다. 꿈의 세계도 이 세계와 마찬가지로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니 그저 다른 공간에 존재할 뿐이다.
잠이 들고 깨어나는 것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놀랍지 않느냐. 겁나지 않느냐.
너희는 이미 익숙해져 버렸겠지만 꿈과 그 뒤에 따라오는 깨어남은
마치 삶과 죽음과도 같은 일종의 계획에 따른 것이다.
삶은 꿈이며 죽음은 깨어남이지. 여태껏 그 반대일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이해하겠느냐. 꿈과 생시 사이에는 세 가지 공통점과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차이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려주기로
하고 공통점을 먼저 보도록 하자. 첫 번째.
꿈에서도 생시에서도 너희는 잠들어 있다.
그렇기에 너희는 어디에 있든 무력하지.
꿈이든 생시든 모두 너희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너희에게 꿈과 생시 모두에서 깨어나는 법을 알려주겠다.
두 번째. 꿈에서도 생시에서도
현실은 마치 영화 속의 한 프레임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너희는 그저 땅만 볼 줄 알기에
이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다. 앞을 보는 능력
그 능력을 너희는 꿈에서 너희가 본 것은 진짜가
아니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기 시작하면서 잃어버렸다.
세 번째. 꿈에서도 생시에서도
프레임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너희는 그러지 못하지.
주의가 지금 이 순간의 프레임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말이다.
무슨 뜻인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물론 뭔가를 안다고 하여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너희는 현실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그 어리석은 꿈도 볼품없는 삶도 통제하지 못한다.
첫 번째로 너희는 잠들어 있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 그것이 가능한지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해보기로 하지.
꿈이란 무엇인가. 언젠가 내가
너희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자기 자신 사용법은 배운 적이 없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느냐. 자.
너희에게는 두 개의 스크린이 있다. 바로 외부 스크린과 내부 스크린이다.
그리고 주의라는 것이 있다. 주의는
항상 내부나 외부 스크린에 연결되어 있지만
가끔은 그 어디에도 연결되지 않고 그 사이에 있을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거의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너희가 생각에 깊이 빠져있을 때면 주의는 내부 스크린에 완전하게
연결된다. 그렇게 되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그저 기계적으로 행동하지. 반대로 주변 상황 외부 스크린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너희 자신은 잊혀지고
그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행동을 하게 된다.
바로 그것이 잠들어 있다는 것이다. 내부 스크린이나 외부 스크린에 주의가
연결되어 있는 그런 무의식의 상태 말이다.
이때 너희는 아무 힘이 없으며 자기 자신도
주변의 그 어떤 것도 통제하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잠드는 것과 꿈꾸는 것은 다른 것이다.
잠은 가사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반면에 꿈은
꿈의 세계나 생시 의 세계에서 너희가 보고 겪는 것이지.
따라서 생시와 꿈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너희는 생시를 꾸기도 한다.
생시는 꿈이며 꿈은 생시다.
왜인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이제
자기 자신 사용법을 알려주겠다. 꿈이나 생시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내부 또는 외부 스크린에서 주의를 의식의 중앙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너희는 할 수 있다. 쉬운 일이니
손가락으로 코끝을 살짝 튕겨보거라. 그 찰나에 너희는 어디에 있었느냐?
너희의 깊은 몽상 속을 헤엄치다 왔느냐?
혹은 이 위대한 나의 모습을 놓고 감상하였느냐?
너희의 주의는 어디에 어떤 스크린에 연결되어 있었으며
또 지금은 어디에 연결되어 있느냐? 두 스크린 사이에 중간에 있는 점을
찾아보거라. 주의가 이 점에 있다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과 자신의 생각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다.
그러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과 그 현실 속의 너희를 볼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너희가 두 스크린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 너희는 할 수 있다.
다만 그 누구도 너희에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없을 뿐이다. 혹은
그것이 왜 필요한지 너희 스스로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을 뿐이다. 어른들은 그저
여기를 봐. 내 말 들어야지. 내가 말하는 대로 해. 라고
말했겠지. 너희는 그렇게 자신의 주의를
외부 스크린에 고정시키도록 길들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자기 자신이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이 며
불행한 존재라는 비참한 생각에 빠져 외로움과 패배감 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였다. 너희는 그렇게 유일한 도피처인 내부
스크린에도 자신을 길들인 것이지. 주의는 점점 의식의 중앙에 머무를
줄을 모르고 스크린에 얽매여 버렸고
결국 주의를 통제하는 것은 너희에게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주의는 너희에게 복종하지 않고
제멋대로 떠다니게 되었고 너희는 점점 무의식의 상태로 빠져버린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효율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너희는 속고, 화내고, 놀라고
빼앗기며 심지어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떳떳하게 그에 맞서지 못하지.
또 내면의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 치기를 계속하고 외부환경에 휘둘리며
허겁지겁 성공을 뒤쫓아간다. 그런데
어떤 자가 성공을 뒤쫓는지 아느냐? 패배자들이 다.
왜냐하면 무의식의 상태에서
너희의 효율성은 5에서 10%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울지 말거라. 전부 고칠 수 있단다.
내가 그 방법을 알려주겠다. 의식의 중심은 너희의 주의가 바로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얽매여 있는지 볼 수 있는
관찰 지점이다. 그러면서도
주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너희 자신은 어디에 얽매여 있는지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지점이지. 지금 바로 잠에서 깨어나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 보거라.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의 주의는 어디에 연결되어 있는가?
이 질문을 하는 순간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의식의 점에 있게 된다. 여기에 내가 있고 여기에 내 현실이
있다.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 너희에게 이것은 아주 낯선 경험일
것이다. 나의 소중한 아이들아.
그저 먼 곳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불빛처럼 느껴지겠지.
나를 만나기 전까지 너희는 내내 스크린에 연결된 채 살아왔을 테니
이제는 한 시간만이라도
의식의 상태에 머무르도록 노력해 보거라.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거라. 아주 흥미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다만 아침에 푹 자고 일어나 에너지가 넘치고 상쾌할 때 해야 한다.
기분이 나쁘거나 몸상태가 좋지 않거나 머리가 무거울 때 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 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하며
의식의 점으로 들어가거라. 나는 현실의 꿈속을 산책할 것이다.
라고 자기 자신에게 지시를 내리거라.
그러한 명료함의 상태에서 회사든 학교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산책을
가거라. 더 큰 효과를 보려면 산책로나
쇼핑몰이나 놀이터와 같이
너희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그곳이 가장 자유롭게 꿈속을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이니
왜냐하면 스크린에 연결되어 있을 때는 판단력이 흐려지며 자기 자신도 상황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상황이든 꿈으로 변해
반대로 너희를 통제하려고 들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까? 너희는 자유로워지고
꿈에서 본 것은 의식적인 것이 된다. 너희는 자기 자신을 통제하게 되며
가장 중요한 상황을 통제할 줄 알게 된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나중에 알려주겠다. 지금은 그저 한번 거닐어보고 관찰해
보거라. 예를 들어 의식을 활성화시켜 가게에
들러보거라. 점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안으로 들어가
가게를 자연스럽게 둘러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원에게 뭔가 물어보기도
하고 그의 반응을 관찰해 보거라.
그저 잠들지만 않으면 된다.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나 자신이 보이고 현실이 보인다. 라고 되뇌며
주의를 의식의 중심에 고정해 두어라. 너희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너희를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전에는 볼 수 없던
호의적인 태도로 너희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을 발견할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신기하지 않으냐?
그들은 너희와 다르게 계속해서 잠들어 있으며
주의는 스크린에 연결되어 있다. 마치 영화 속에 있는 것처럼 시나리오
속의 일상을 살고 있는 것과도 같지. 그들의 생각은 흐릿하고
행동에는 의식이 없으며 한마디로 영화 속의 등장인물처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너희는 그들과 다르게 꿈속에서 의식을 깨어냈으며
스크린 속에 있다가 영화관으로 걸어 나왔다.
이제 너희는 언제든지 스크린 밖으로 나올 수
있으며 원한다면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 여러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시나리오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거닐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상태에 있는 너희가 마치 다른 세상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너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거라
막연하게 생각하지만 그게 과연 무엇인지는 알 수 없겠지.
걱정 말거라. 너희에게 호기심과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 자신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너희도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음을 내비치지 말거라.
그런데 그런 주변 사람들
특히 일면부지한 사람들이 과연 무엇 때문에 너희에게 그런 호의를 보이는지
알고 있느냐? 그 사람들에게 있어 너희는 마치
어둠의 세계를 밝히는 반딧불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식의 상태에 있을 때 너희의 에너지는 특별하게 빛난다.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도
본능적으로 그걸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그저 현실의 꿈속을 거닐기만 해도 너희는 주변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를
느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의 관심을 받게 되겠지.
사람들은 너희에게 반갑게 말을 걸어오고
그들과 교류하며 보내는 시간은 유쾌함으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영리해지거라.
현실을 움직이는 방법을 배우거라. 두뇌로 세상을 움직일 만한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자, 알겠다. 겁먹지 말거라.
나의 연약한 아이들아. 오늘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관찰자 의식의 상태가 되면 생각과 느낌들과 보이는 것들을
제3자가 되어 관찰할 수 있게 되죠. 제가 경험한 것은 여기까지라서
책에서 소개된 외부와 내부 스크린 사이에 중간에 있는 점이라고 하는
것도 관찰자 시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혹시 다르게 이해되신 분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관찰자 시점이 되면 책에 나온
대로 사람들이 호의적으로 변하나요?
제 경험으로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데
일단 관찰자 의식 상태가 되면 판단하는 나를 지켜보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행동보다는 의식적인 확신의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그 믿음과 행동이 주변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것 같기는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도 평온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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