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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⑦] 조선 최고의 벼락 출세 주인공은 어떻게 망가져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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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19
강화도 역사여행.. 이번에는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진 철종을 만나러 갑니다. 농사꾼으로 살던 철종의 생가, 외가, 약수터 등 철종의 흔적을 찾아가며 조선 말 한 비운의 국왕을 떠올려봅니다. #철종 #용흥궁 #봉이
자막

강화도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역사 여행 오늘 주피 디는 한 조선왕의 발자취를

찾아갑니다 강화도의 조선 왕이라고 하면은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죠네 강화 도령으로 불리는 제 25대왕

종입니다 벼락 출세의 대명사이자 조선말 엑스트라처럼 스쳐간 왕은

강화도에 무엇을 남겼을 여름 더위가 기세를 올리던 1849년

7월 어느 날 한적한 섬에 으리으리한 행렬이

들어왔습니다 행렬은 골짜기와 논밭 마을 사이로 수킬로미터 길게

이어졌는데 영의정을 지낸 정원용이 이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강화도 북동쪽 허름한 초가집으로

향했습니다이 집에 살던 19살 총각 이원 범을 왕으로 모셔 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디가 그 초가집을 찾아갔습니다 초가집 대신에 기와집이

들어서 있고 대문에는 용흥궁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흥선 대원군의

글씨입니다 농사꾼으로 살던 총각이 졸지에 왕이 됐으니이 집은 잠저 즉

왕이 살던 특별한 개인 집이 됐고 철종 즉위 후 번듯한 기와집으로

바뀌었습니다 강화도에 묻혀 살던 이름없는 총각이 왕이 된 것은 왕실의

후손이 끊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직전 왕인 24대

헌종은 왕비 생이든 후궁 생이든 아들을 두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 연결고리가 있는 혈통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선택된 인물이 종이었습니다 철종을 흔히

강화도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강화도에서 태어 하고 자한 토박이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요 사실 철종은 서울에서 태어나 14살

아지 살았습니다 그러다 큰형이 영모 사건에 연루되면서 가족과 함께

강화도로 유배됐다 5년을 농사 지으며 살다가

갑자기 왕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전하는 얘기에 따르면 그즈음

철종에게 사귀던 동네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봉이라는

소녀입니다 그런데 철종이 갑자기 왕이 되에 떠났으니 이들은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총각 이원범 봉이의 풋풋한 사랑을 모티브로 강화군은 강화도령 첫

사랑길이라는 답사기를 꾸몄는데요 그 11.7km 나들길 도중에 약수터가

있습니다 이원 범은 외곽 집을 가는 도중에 있는이 찬우물 약수터에서

봉이를 만나고 [음악]

했이 이야기는 훗날 더 살이 붙었습니다 철종이 왕이 된 후 봉이를

후궁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미천한 신분의 여자가 후공이 되는 것을 맡기

위해 당시 권세가들이 봉이를 독살했다는 것입니다 철종과 봉이의이

모든 스토리는 물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민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옛 이야기속 청춘남 여름에 갈증을 시켰을 찬우물

약수터는 시원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원한 약수물을 아낌없이 내주고

있습니다 약수터에서 2km 남집 남쪽으로 내려가면 그 외갓집이

있습니다 용궁에서 시작되는 강화도령 첫사랑 길이 끝나는 지점입니다

철종의 외삼촌이 살던 집인데 철종이 후에 지어져 평범한 여염집 달리 격식

갖춘 사대부 집으로 돼 [음악]

[박수] 있습니다 철종을 왕으로 선택한 사람은

왕실의 큰 어른이든 순원왕후 김 씨였습니다 그녀는 당시 안동김씨 세도

정치의 핵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안동김씨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철종 함양 미달의 인물을 선택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당시에는 워낙 대를 이을 만한 후손 풀이 적어서 철종이 그나마

가까운 중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쨌든 왕실 종친이

아고는 하나 궁궐 옆에는 가본 일이 없고 겨우 기초 교육 정도 마친

수준이었으니 국왕으로서의 자질은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순조 때부터 이어온 안동김씨 세도 정치가게 달하면서

중앙부터 지방 권력까지 쥐락펴락하던 때였으니 철종 럼 하루 아침에 왕이

된 사람이 왕노릇 하기에는 더욱 어려운

건이었습니다 순원 왕우가 철종 직위와 함께 3년간 수렴 청정을 한 후

내려왔지만 힘없는 왕의 처지는 그대로였습니다 철종을 왕에 앉힌 순원

항우는 안동 김시인 철인 왕후를 왕비로

[음악] 간택했다 가문은 순조 헌종 철종

3대에 걸쳐 중전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들의 60년 세도정치는 흥 대원군이

집권하면서 와해 됐습니다 안동김 씨의 권력이 커질수록

민생은 도탄에 빠졌습니다 중앙 관료부터 지방 수련까지 매관 매직에

성행했고 전정 군정 환곡을 지칭하는 삼정의 문란이 극심해 원래 나라의

재정 정책이자 빈농 구제 제도이다 것이 백성에 대한 수탈도 전락하다시피

했습니다 강화도에 살면서 농민들의 피한 삶을 직접 겪었던 철종은 삼정의

문란에 대해 여러 차례 문제 의식을 드러냈습니다 현재 삼정이 모두

병들어서 민생이 고달프고 초치해 있다 그중에서도 적정은 가장 백성의 뼈에

사무치는 폐단이 되었다 심지어 나누어 주지도 않은 곡식을 독하니 우리

백성들은 장차 무엇으로 생계를 꾸리겠다 하지만 안동김씨 세상에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종에게는 왕이라는 이름은 있을지언정

권도 세력도 없었습니다 마침내 학정을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으니 경상도 진주를 시작으로 전라도 충청도까지 삼남 지방을 휩쓴

임술였습니다 곳에서 백성들이 관를 습격해 수령을 욕보이고 아들을

죽였습니다 종은 임술 의 개혁을

추진했습니다이를 위한 기구인 삼정 이정도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삼정

이정청 구성하는 관료들이 대부분 안동김씨를 비롯한 세도가 들이었습니다

개혁 대상에게 개혁을 맡긴 셈인데 잘들 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3개월 만에 삼정 이정청이 폐지되고 개혁도 흐지부지

되면서 조선은 더욱 병들어 갔습니다 마음은 있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임금 철종은 갈수록 국정에서 멀어지고

대신 술과 여색을 가까이하며 스스로 무너져 갔습니다 말년으로 갈수록

강화도에 가고 싶다는 말도 종종 했다고 하는데 모든 것을 체념한 심정

아니었을까요 결국 19살 젊고 강건했던 청년은 용상에 오은지 14년

6개월 만에 병든 몸으로 세상을 하 했습니다 그의 나이

살이었습니다 철종은 철인왕 후궁 여섯명을 부인으로 뒀습니다 오남

6년을 낳았으나 모두 어릴 때 죽었는데 가장 오래 산 자식도

14살의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철종의 혈육은이 세상에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철종이 왕으로 있었던

1800년대 중반은 과학기술과 군사력으로 무장한 서구 국가들이

동양으로 세력권을 넓혀가던 시기였습니다 개국 400년을

넘어가면서 온갖 병가 누적된 데다 세도 정치라는 비정상적 정치 상황에

서양 세력의 등장이라는 외지 밀어 닥치자 조선은 총체적으로 길을 잃고

말렸습니다 그 어떤 탁월한 지도자라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았을 텐데

준비되지 않은 임금 에는 더더욱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은 농사에서

임금이 된 조선 최고 벼락 출세의 주인공이면서 우연히 역사의 무대 앞에

불려나와 엑스트라처럼 스쳐지나간 불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철종은 눈을 감으면서 화려한 군과

북적이는 한양이 아니라 강화도의 그 바 그리고 봉이를 그리워하지

않았을까요 피디의 역사 여행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