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즉 과거의 경운궁의 서쪽 이곳엔 한때 황실 여성들의 거처로
추정되는 공간 정덕원이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방송국 한식당으로
그 자리를 달리해 왔습니다. 그리고 2023년 그 역사적 터위에 새롭게
태어난 공간 스페이스 소포라. 적벽돌 건물 속에 과거의 흔적을 품은 이곳은
오늘날 예술과 문화가 숨 쉬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저 넘어가면 이제 그 구러시아 영사관 저쪽에 하얗게 보이는 표추가 탑이
그게 구영사관이었어요. 러시아 영사관에서 뭡니까? 현재
코시남 헤리티지 워커즈들이 내려가고 있는 스페이스 소포라 즉 구정덕원
언덕에서 저 멀리에는 러시아 공사관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변에 건물이
많지 않아 러시아 공사관에서도 경운궁 특히 이곳 정덕원이 잘 보였으리라
봅니다. 그러니까 이게 정동이라는 데는 큰
길만 걸으면 모르는데 이렇게 들어와서 내부적으로 이렇게 다녀보면 아 정말
좀 아름답고 확실히 그런 장소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면 보시면 빌딩에
가려 있으나 살짝 보이는 러시아 구공사관이 있습니다.
고종은 좌측 덕수궁 후문에서 나와 고정의 길 즉 킹스로드를 통해 여시어
공사관으로 피신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정확한 피신 경로에 대해서는
보다 더 정밀한 역사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아, 여기가 구세군나. 네. 그래가지고 뭐 여기 안에
박물관처럼 돼 있어서 정동 주변은 열강의 각축장이었고
그들은 총칼로 왕시를 위협하고 종교와 교육으로 조선인들을 교화하는 과정에서
공간에서의 자신들의 위을 건축으로 남겼습니다.
저 기둥 양식 보세요. 토양식으로 해 가지고
상당히 특이하게 저렇게 해 놔 가지고
한국의 구세군이 처음 발을 디딘 건 1908년 서울정동에서였습니다.
이들은 음악대와 함께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고 자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일부의 오해와 부작용이 있지만 1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구세군은
한국 사회 구석구석의 따뜻한 자선의 손길을 전해왔습니다.
구세 박물관이라는데요. 지금 코시남은 해리티지 워커들을 흥덕전과 선원전
방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흥덕전는 왕실 여성이나 후공들이
머물던 생활 공간으로 조선 후기궁 중의 일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그 옆선원전은 조선 왕들의어진 즉
초상화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었습니다.
현재이 두 문화유산 모두 복원 중에 있는데 여기를 통해 구러시아
공사관으로 행진할 예정으로 보입니다. 그게 불교 사찰하고 똑같거든. 아,
불교 사찰이 호화로울수록 그게 막 그 술 팔고 막 이랬던 고려하고 똑같은
거예요.이 비싼 땅에이 격수 초등학교 보세요.
오늘 아까 그 저기 길 안쪽에 그 박원수 시장이 만듯이
여기 어 우리이 길로 가야 되는데. 어머
여기 막아놨네요. 이쪽으로 가야 되나? 네. 보세요.
국 홍덕 보원하네요. 여기가. 아,
여기서 보건하는구나. 아, 복원에 또 막혔는데요.
원래 이길로 이길로 해서 저기 안을 들어갈 수 있어요. 있어요? 네.
들어가에 들어올 수 공개하려면 안돼.
응. 이쪽길를 이렇게 갔어야 되는데 이
털을 털을 먼저 닦네요. 이거 보니까음
밑에부터 다 어 이렇게 가면 안 되나? 저렇게 갈 수 있는
오늘만 원래 휴문데 가시죠. [웃음]
저는요 저기 와 가지고 저 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저 앞에 저 앞에
기화로 해서 저 앞에 있잖아요. 저게 그래서 저걸 왜 개방을 왔나 이렇게
다 막어 놨거든요. 가서 보니까 어 그랬더니 저게 조선 은행 일본인
일본인 은행장의 사택이었다. 아 웬 일이야? 그래 갖고 저걸 지금 저걸
때려 없앨 건지 그대로 복원을 해서 할 건지 그걸 논의 중이에요. 아직도
이거 여기 하는 거는 여기가 선원전인데이
선원전이 뭔거하니? 임금의 어전 임금의 얼굴을 그려 가지고 이렇게
거기 해 놨던 그런 그니까 여기 경궁 덕수궁에 어진을 모셔 갖고 제사
지내는 아 그럼 저거 때려 보셔야죠. 그러니까 그렇게 돼 있으니까 저게
이제 저거 나중에 먹으면 진짜 야 예쁘다 이랬 그러니까 알고는 저
부셔야지 얼마나 그렇게지 말고 파가지고 다른 데다가 대사가 나한테
저것도 보관하라고 내 거니까 그니까 여기 두면 안 될
거 같은데요 뭐라고 하 여기 두면 안 되지
어디 오셨습니까 저기 이렇게 지나가려고 하는데요
강사님 박사님이 잠깐 소개만 하신다 그래가지고 외국인데 금방 끝납니다.
고생하시이 이쪽으로 가도 됩니까? 아니 그때 원래 트립은 네 이렇게
위로 올라가셔 가지고 아 저쪽으로 있어요. 쪽으로 가시는 거죠? 아,
네. 네. 네. 그쪽 봉원 출입가 따로 있습니다. 복원 출입 예.
나가셔가지고. 아, 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죠.
아, 저 집이 제일 아까워요. 그래서 안 되겠는데 그러니까 난 너무
아름다워 가지고 그랬더니 지금 더운 시장이요. 예. 예. 분한테 가서
말씀을 드리고 어때우는 무조건 복원이더라고 그냥.
그 저기 그 저쪽에 조선 저축은행 중역 사태 건물은 단순한 오래된
구조물이 아닙니다. 식민지 지배의 상징이자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할 어두운 유산 즉 다크헤열 제지입니다. 철거냐 보존이냐를 넘어이
유산을 어떻게 다룰지 깊은 논의가 필요합니다. 공립인가요? 응. 공립
수교사 다 공립. 음. 코시남은 헤리티지 워커들을 선원전
옆에 도로를 통해 바로 구러시아 공사관으로 이끌고자 하였다. 그곳에서
악관파의 생생한 현장에서 역사 탐방 강의를 하고자 했었습니다.
그러나 통행 제지를 받고 대안으로 고종의 길 방향으로 이동해서 보건
길로 안내를 받았으나 월요일은 고종의 길 또한 운영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이 이 경우 다시 왔던 길로 돌아 상당히 우회해야지만 굿러시아
공사관에 도착하게 됩니다. [음악]
답답한 제프가 공무원들의 융통성을 기대해 봅니다.이
고종의 길입문만 통과시켜 주면 구러시아 공사관으로 쉽게 갈 수 있을
텐데. 문화유사는 국민 모두의
공공자산입니다. 국민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문화유산을
향유할 권리, 접근할 권리, 그리고 감상하고 체험할 권리를 가집니다.
제프가 직접 문의를 통해 문화재 주변 통행의 자유권을 행사하고자 시도하지만
현장 직원 및 공무원들만 오고 갈 수 있다고 합니다. 역시 월요일에는
일반인들의 통행을 위한 개방은 없는 것으로 최종 판단됩니다.
국민은 앞서 언급드렸듯이 문화 유산을 자유롭게 접근 감상, 체험, 해석,
공유할 수 있는 포괄적 권리인 문화 유산을 향권을 가집니다.
이러한 권리는 단지 관람을 넘어서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며 삶 속에 문화
유산을 살아 있게 만드는데 그 의미가 있죠. 하지만 다른 한 편은
공공행정의 효율성과 유지 관리 권한 그리고 문화유산의 물리적 보조무가
존재합니다. 문화재는 훼손 없이 다음 세대에 물려 줘야 할 자산이기에
정기적인 점검과 정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한이를 지키고 관리하는
근로자들의 휴식권과 노동권도 보호받아야 하죠.
결국 문화유사는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이 만나는 접점입니다. 향유권과
보존무, 접근과 행정효율성, 이용권과 노동권 이상반된 가치들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느냐가 진정한 문화 선진국의 기준이 될 입니다.